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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자가용1호는 이 왕가의 것을 제외하고는 천도교 교주 손병희가 탔었다. 일제 말 제일 늦게까지 자가용을 몰 수 있던 것은 당시의 유일한 민간항공사이던 신용욱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6·25동란 때까지만 하더라도 자가용으로 피난 갈 수 있던 사람은 불과 몇몇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 중, 특히 군 장교들이 멋져 보이던 것도 그들이 탄「지프」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게 모두 엊그제 일만 같은데 서울의 거리에는 지금 자가용차들이 홍수지고 있다. 최근에는 또 옛날 같으면 만석꾼도 엄두를 못 낼만큼 값진 차들을 행정·입법부의 고관대작들이, 몇 대씩이나 사들일 계획으로 있다 한다.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된 모양이다.
1933년에 광산왕 최창학이가 샀던 「뷰이크」차 값은 당시 1천 1백 45원이었다. 그때보다 물가가 몇 만배는 뛰었을 테니 「고도성장」을 한 지금, 2천만원 짜리라고 놀랄 것은 하나도 없다.
미국의 어느 경제학자의 말을 따르면 사람의 구매심리는 다음의 세 가지 중의 하나를 따른다고 한다.
우선 「밴드·왜건」 효과(Band-wagon-effect)라는게 있다. 악대차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처럼 유행에 휩쓸리는 심리를 말한다. 옆집에서도 샀는데 나라고 안 사고 배기겠느냐는 것이다.
「스놉」효과(Snob-effect)라는 것도 있다. 그까짓 놈이 산 것을 어떻게 내가 살 수 있겠느냐는 일종의 속물근성에서 남들이 갑(甲)이라는 상품을 산다면 자기는 을을 사서 자기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리려는 심리를 말한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지프」나 다른 싸구려 차를 타는 체하면서 실지로는 고급 차를 따로 한 두대씩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와도 다르다.
「베블런」효과(Veblen-effect)라는게 또 있다. 경제학자의 이름을 딴 이 효과는 기왕에 살 바에야 제일 비싼 것으로 뽐내보겠다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오늘의 고관대작들이 앞을 다투다시피 이런 식의 「베블런」효과를 따른다고 나무랄 수만도 없을 것이다. 도시 외국에선 차란 신분의 상징이라지만 우리나라에선 출세의 척도가 되고 있다. 차형과 출세와는 정비례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이것을 대외적인 체면을 위해서라 돌려댈 필요도 없다. 그것은 고관대작의 체통에도 어울리지 않는 옹졸한 변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중한게 「자가용」차이다. 제 돈으로 사서 결딴내기엔 너무나 황송스럽기도 하다. 남의 돈으로 「자가용」행세를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돈을 가지고 남의 돈처럼 생각하는데서부터 온갖 부정부패의 싹이 튼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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