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풍 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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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후진국가사회가 사치풍조를 띠는 것을 가리켜 디몬스트러티브·이펙트라고 말한다. 이 용어는 원래 경제학에서 나온 말이지만 우리가 흔히 쓰는 전시효과란 뜻이다. 이를테면 잘 입음으로써 또는 갖은 치장을 함으로써 자기의 결함이나 무지의 면을 카무플라지 하는 효과를 말할 것이다.
한편 후진국 사람들은 이 효과에 서로 속고 따라서 이 속임수의 경쟁을 이른바 생존경쟁처럼 여기는데 우리는 바로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경쟁을 많이 보아왔다. 특히 부인들이 여기에 신경을 많이 썼고 이 경쟁이 우리 사회의 모든 계층에 번져 그칠 줄을 몰라 슬플 지경이었다.
문제는 이 전시효과에 속는 우리들이다. 필시 요즈음은 사람의 판단 기준을 아예 전시여하에 두는 것으로 풍조가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지식을 생업으로 하는 분이나 인간의 위엄과 인격을 위주로 하는 분들도 그 가족의 일각에서 이에 휩쓸려버리는 느낌마저 있다.
사회의 기틀이 짜인 유럽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 예를 들어 영국이나 불란서의 경우는 돈 많은 사람, 말하자면 사업이나 강사를 해서 부유해졌다고 해서 그가 상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어디까지나 중류로 취급된다. 특히 갑자기 돈을 번 사람을 불어로는 누보·리쉬라고 하여 천시하는 표현을 한다. 과연 돈 자체는 개인의 취미나 지식·식견에 대하여 직접 보탬을 주기보다는 그를 오히려 속물로 만들기 마련이다. 그쪽 나라에서는 오늘도 지식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을 상류로 대우하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기실 요를 따지는 것은 센티멘털리즘이라 치고, 그러나 우리의 경우도 돈의 속물성은 부인 못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 자가용차 하나로 상류에 떠받쳐지는 개념은 실로 속물 스럽다. 젊음과 지식의 함수를 표방하는 학교에서까지 같은 기준을 쓰고 있는 모양인데, 요즘 여러 가지 신 풍운동이 오가는 차제에 가정상황을 파악하는 난에 그 가정의 장서의 권 수라든 가를 적게 함으로써 청소년의 머리에서 속물이 상류라는 오해를 씻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기야 장서를 신 풍전시의 효과로 여기는 것도 어쩌면 어색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박태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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