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가판신문 구독 중지' 안팎] 街版보고 '기사 로비' 풍토가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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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지난달 26일 그동안 구독해오던 서울 시내 조간신문 저녁 가판(街版) 2백48부를 모두 끊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판 보도를 보고) 비정상적으로 협상하는 것을 금지하는 대신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정정.반론보도를 요청할 방침"이라고 말한 후에 이뤄진 조치다.

가판 구독 중지가 정부 각 부처로 확산하면서 기업들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가판이란 무엇인지, 그 필요성 여부와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구독 중지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정리해 본다.

◇가판 신문이란=두 가지 뜻이 있다. 가정배달판 중 지하철 등에서 판매하는 가판(街販)신문과 조간신문들이 발행일 전날 저녁 인쇄, 판매하는 가판(街版)신문을 함께 일컫는다. 청와대가 이번에 문제삼은 것은 그 중 후자다.

서울에서 발행하는 조간신문들은 지방까지 수송시간을 감안해 발행일 전날 저녁부터 인쇄에 들어가 처음 제작한 초판신문을 바탕으로 밤새 최신 뉴스를 보충해 가면서 4~7개 판(版)을 제작한다. 이 중 처음 인쇄한 신문을 서울 도심에서 가두판매하는 대부분의 신문사에선 초판신문이 가판(街版)이 된다.

외국 조간신문들은 초판을 발행일 전날 찍되 대개 가두판매는 하지 않으므로 우리 식의 가판은 없는 셈이다.

가판은 원래 정보를 빨리 보고 싶어하는 일부 독자들의 수요에 응한다는 측면과 함께 지방 배달시간을 맞추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지방 인쇄시설이 없는 경우 특히 그렇다.

해외판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현재 중앙일보는 미주판의 마감시간에 맞춰 국내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 저녁에 첫 판을 만들어 전송한다. 물론 인쇄는 하지 않고 그 내용을 중앙일보의 자회사인 인터넷신문 조인스닷컴에도 올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을 위해서다.

◇가판 신문 현황=가판의 70%는 거리.지하철 등 서울시내 가판점에서 정상가격으로 일반인에게 판매된다. 나머지는 정부 부처와 대기업 홍보실 등이 특수총판을 통해 배달받아 본다.

신문판매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의 조간신문사들은 사별로는 5천~1만부씩, 하루 총 5만부 정도의 가판을 발행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구독료로 따지면 월 5억~6억원으로 전체 신문시장의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제작비에 비해 부수가 적어 수지면에서는 거의 적자를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가판, 왜 문제인가=가판과 다음날 아침 배달받아 본 신문내용이 다르다는 점에서 논란거리가 생긴다. 밤새 생긴 새 뉴스 때문에 지면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로비.압력에 의해 기사가 바뀐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2001년 10월 16일자부터 저녁 가판 발행을 중지했다. 현재 서울의 조간신문 중 유일하게 가판을 내지 않는다.

당시 중앙일보는 저녁 가판 발행이 "신문사끼리 남의 신문을 베껴 결과적으로 한국 신문들이 똑같다는 비판이 나오게 됐고 외부에서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악용된 측면이 적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자율개혁 차원에서 이를 폐지했다.

이는 가판을 보고 정부나 기업의 관계자들이 신문사로 찾아오거나 전화를 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축소.삭제토록 로비를 벌이거나 압력을 넣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가판 부작용을 없애려면=가판은 순기능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용하는 풍토도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대통령 지시에 따라 획일적으로 구독 중지토록 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적지 않다.

정부의 언론간섭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가판의 구독을 중지한다고 정부기관이나 기업 등이 각 신문사가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초판기사까지 보지 않을지도 미지수다.

따라서 '권언유착'을 막으려면 우선 권력이 언론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가 필요하다. 신문사도 줏대있게 판단해, 오보라면 당장 정정하고 그렇지 않다면 기사를 빼거나 고쳐주지 않는 당당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가판 발행 여부는 신문사가 자체적으로 판단할 일이다. 권력이 입맛에 따라 특정 매체를 챙기거나 반대로 영향력을 줄이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이 권언유착을 막는 첫걸음인 것이 분명하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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