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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재현된 신판 종교전쟁|세계각지의 분쟁내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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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계의 강대국들이 지구의 판도를 새로이 작성하느라고 부산한 요즈음, 북「에이레」에서는「카톨릭」소수파를 지원하는「에이레」공화국 군과 영 본국의 정규군이 연일충돌, 16세기의 종교전쟁을 연상시키는 사태를 빚어냈다.
인도와 「파키스탄」관계의 악화, 「아랍」「이스라엘」대결,「키프로스」도의「그리스」계와「터키」계의 층돌,「수단」내 북부「아랍」계 회교도와 남부 흑인계 기독교도간의 부화대립도 종교분쟁의 양상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분쟁의 밑바닥에는 종교의 배타적 교리로 무장한 두 집단간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깔려있음을 발견한다. 각지의 현대판 종교전쟁이 저질러놓은 혈 제의 내막을 살펴본다면-.
▲「에이레」=북「아일랜드」의「카톨릭」교도들은 4세기이래 영국왕권과의 대결을 통해「로마」정교를 전수·토착화시키고, 16세기엔 영국의 식민지정책, 신교(영국국교)강요, 참정권 공직취임 권 박탈, 토지매매금지 등 여러 가지 차별대우를 받아왔는데 이들은 오늘날에도「슬럼」가에 살도록 강요당하고 보통선거권도 없이 주택을 가진 가구주에게만 투표권이 인정되어 있다.
영국전체의 실업률 3·4%가운데 북「아일랜드」가 10·2%나 차지하는데 그 중에서도「카톨릭」교도의 비율이 8할을 차지할 정도로 이들은 생계의 방도가 제약돼 있다.
「카톨릭」소수파의 민권운동을「데블린」처녀의「잔·다르크」적 불복종운동을 거쳐 최근엔 IRA(에이레 공화국 군) 의 도시「게릴라」행위로 급진 화, 정치노선도「에이레」공화국과의 통합과 사회주의적인 강령을 채택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이들이 최근 임시정부수립기도로까지 나가자 영국정부는 최신장비로 무강한 정규군 1만2천 여명을 파견,「위험인물」을 재판 없이 구금하는 비상 책을 강행한 결과 이번의 유혈 폭동을 유발했던 것이다.
▲인도·「파키스탄」=서「파키스탄」중앙정부가 동「파키스탄」「벵골」인의 자치와 불평등시정 요구를 「탱크」로 암살한 뒤 이곳의 회교도 대「힌두」교도, 인도·「파키스탄」의 고질적인 반목은 또다시 무력충돌의 위험을 빚어내기에 이르렀다.
회교가 인도에 전파된 것은 16세기, 16세기엔 회교도의「무갈」제국이 번성하기도 했다.
그러나「브라만」교와「베다」경을 거쳐「힌두」교로 이어지는 인도의 토착종교 및 그것이 만들어낸「카스트」제는 이 나라 사회의 기본골격으로 굳어졌던 만큼 외래문화요, 외래제도라 할 회교와는 자연 불화를 빚어내게 마련이었고, 영국의 분할통치방식이 이 분규를 가중시켰다.
동「파키스탄」의「힌두」교도인「벵골」인은 회교도 지배층인「푼잡」인에 대항하다가 무자비한 학살을 당했는데「인디라·간디」수상이 같은「힌두」교도로서 중공과 미국의 「파키스탄」지원에 맞서 소련과 우호조약을 맺음으로써 남「아시아」에도 미·소·중공 삼국구조가 침투할 계기를 만들었다.
▲「키프로스」=이곳「터키」계 회교도와「그리스」정교도 간의 분쟁은 멀리「오토만·터키」에 의한 동「로마」제국의 멸망에까지 소급되는 뿌리깊은 사태다.
일 찌기 사도「바울」과「마가」가 포교한「키프로스」는 서기 431년의「에베소」회의에서 독자적인 대주교 선출 권을 획득, 오늘날「마카리오스」대통령 같은 민족적인 제정일체의 수장이 나올 전통을 확립했고, 7세기이후 동「로마」제국의 판도로 들어간 부단히 반복된「모슬렘」의 침공을 격퇴면서 십자군전쟁에도 참여했던 만큼 16세기에「베네치아」의 지배에서「터키」의 지배로 넘어와 다시 1878년 영국의 행정권 아래 들어온 뒤에도「키프로스」의 민족주의와「에노시스」(「그리스」와의 병합) 운동은 굽히지 않았다.
2차 대전 이후엔 반영폭동을 일으켜 60년「마카리오스」대주교지도하에 독립, 이에「터키」계 소수파가 반발하면서「터키」공군기의 공격이 발단시킨 무력충돌 때문에「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되기도 했다.
의회비율은「그리스」계 35명,「터키」계 15명으로 나누기로 돼 있으나 양대 종교집단간의 분쟁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할 수 없다.
▲「아랍」·「이스라엘」=이들의 대립은 대단히「아이러니컬」한데가 있다. 과거에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회교도가 아니라 기독교도였는데도 오늘날 유대인들은 기독교도인 미-영의 지원을 받아 회교도인「팔레스타인」사람들을 수천 년 동안 살던 고 토에서 추방하고 종말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금세기 초「시오니즘」연동이 일어나 전세계에 흩어진 유대계 류 민들이「팔레스타인」으로 귀향해 토지를 개간하고「로스차일드」가를 비롯, 대재벌이 자본을 투입함에 따라 현지의「아랍」인들과의 분규가 일어났는데 영국의「발포아」선언으로「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의 수립이 확정되었다.
그후 2차대전이 끝나자 미-영의 적극적인 후원으로「팔레스타인」이「이스라엘」· 「아랍」두 지역으로 분할된 데 이어 중동의 화약 구는 몇 차례의 전쟁으로 불붙게된 것이다.
기독교도가 유대교도를 앞세워 현대의 십자군전쟁을 일으킨 동기는 이곳의 석유와 전략 성이다.
그 결과, 이 지역에도 미·소·중공의 삼국구조가 침투해「아랍」회교도와 유대교도 사이의 분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수단」=이 나라 주민의 약 30%인 남부 흑인들은 기독교를 신봉, 북부의「아랍」계 회교도들에 대해 종족적 종교적 반발을 계속하면서 통치세력인「아랍」계에 대해 항상 분리주의 적 연방제를 요구해왔다.
68년 4월엔 남부3주를 포함한 전국통일선거를 실시, 수습의 실마리가 풀리려 했다.「누메이리」정권도 이들에 대한 고려 때문에「리비아」·「이집트」·「시리아」와의 국가연합에도 선뜻 응하지 못했었다.
얼마 전「알·아타」의 침공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주동자들은 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아랍」권 통합에 반대하고 남부의 자결권과 평등 성을 약속하는 듯 했다.
그러나「누메이리」역「쿠데타」로 이들의 자치요구는 또다시 범「아랍」주의의 역 공격을 받아 잠잠하게 되었다. <유근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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