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뜨린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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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하나의 상상이지만, 그래도 이런 장면은 연상할 수 있다. 「제임즈·레스턴」기자는 무려 4시간여에 걸친 단독회견을 흡족히 끝내고 일어서려는 참이었다. 이때 주은내 중공수상은 무엇인가 멈칫거리더니 『좀더 앉으라』고 말했다. 「레스턴」은 새로운 흥미를 갖고 눌러앉았을 것이다.
『「레스턴씨, 내가 당신에게 한가지 빠뜨린 이야기가 있소이다.』
외신에 따르면 주은내는 정말 그렇게 말했다. 「레스턴」은 녹음기의 「스위치」를 다시 켰다. 주은내는 미리 충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양으로 한국문제를 「클로스업」시켰다. 「레스턴」은 정작 이 문제는 큰 화제와 함께 도매금으로 넘겨 버렸었다. 앞뒤의 상황으로 보아 한국 문제에 관한 주은내의 아니면 중공의 관심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닉슨」대통령과 주은내는 이제 한국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주은내는 「레스턴」기자에게 이렇게 말을 이었다. 『한국에는 아직도 휴전만 있고 평화조약은 없다.』
바로 이런 문제는 지난 초순에 한국정전위 「유엔」수석대표를 취임한 「로저즈」소장도 언급을 했었다. 「헤이그」회의(1917년)의 규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그 말이다. 모든 전쟁의 종결은 휴전과 함께 정치회담으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그 정치회담이라는 것은 바로 강화회의를 의미하며, 그 때문에 「평화회담」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그러나 한국의 휴전상태는 「로저즈」장군의 말마따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른 형편이었다. 당시 휴전조약에의 서명은 군사령관들의 것이었고, 또 그런 현실에선 정치회담으로 연결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저쪽을 「교전당사국」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헤이그」의 전시규정으로는 풀이할 수 없는 「제3의 상황」인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덜레스」미 국무 장관의 냉전 체제적 외교방식의 산물이다.
주은내는 역시 그것도 지적하고 있다. 「닉슨」대통령과는 말하자면 「이런 상황」의 변화에 관해서 의논하자는 얘기인 것 같다.
주은내가 이른바 『일본의 군국주의적 팽창』에 관해서 말하다가,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더욱 주목을 끌게 한다. 소위 「일본의 군국주의」, 「휴전으로만 그친 한국의 상황」, 이런 것들이 결국 한국문제를 토론하는 여건의 문제로 제기될 것 같다.
주은내는 「레스턴」과의 회견분위기로 미루어 보아 한국문제에 관한 한, 「어물쩍」하기 보다는 『꼭꼭 집어서』 얘기하자는 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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