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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붐」이는 중국학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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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년 전 미국평화주의자들을 실은 쌍돛배 「피닉스」호가 양자강을 거슬러 오르려다가 중공경비정에 제지되었을 때 「다트마우드」 대학 사학교수 「조너던·미르스키」는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는 모택동주의파의 일본학생들의 선물을 중국에 전해주려고 했던 것인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시도는 중공과 접촉을 해보려던 미국의 중국학자들의 오랜 노력 가운데 가장 신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2주일 전 1949년 공산주의자가 중국본토를 점령한 이래 처음으로 중공을 방문한 미국의 중국학자들이 한달 동안의 여행에서 돌아옴으로써 새로운 국면이 전개됐다.
「닉슨」 대통령의 동방에 대한 문호개방에 따라 「워싱턴」에는 중국학문제전문가들이 웅성대며 대학들은 중국문제학과나 교과과정을 대폭 설치할 낌새를 보이고 있다고 미국주간지 「타임」이 보도하는 한편 미국에서의 중공학연구현황을 소개했다.
이미 「예일」대학은 「중국철학」이, 「하버드」대학에는 중국·「일본입문」이, 「미시건」대학에는 「공산주의하의 중국의 발전」 등 강좌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에 미국대학에서 배출된 중국학자수는 일본에 미치지 못했다. 중국학분야에서 미국은 현재 5백명의 박사학위자와 1천명의 대학원생을 확보했다.
이들은 차츰 대학에서 소련연구가들을 침식하고 있다. 작년에는 5천4백명의 대학생들이 1백개 이상의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했고 약2천5백명의 고교생이 중국어를 공부했다.
흥미있는 것은 소련전문가들이 소련을 싫어하는데 대해 중국전문가들은 중국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처음으로 소련연구가들이 소련에서 나온 피란민이었던데 대해 중국학자들은 선교사들의 자손들로 중국에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데서 이런 경향이 생긴 것 같다.
2차대전과 「매카디」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연구는 감퇴되었다. 1950년대에 이르러 「포드」재단이 2천4백만「달러」의 연구비보조를 하는데 자극 받아 새로운 중국학연구 「붐」이 일었다. 거기다 월남문제 등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역할증대로 유능한 젊은이들이 이 방면에 몰렸으며 일부는 중국문명에 대한 지적매혹으로 여기에 몰렸다. 이들 학자들은 자주 일본과 대만의 도서관들을 찾았고, 「홍콩」의 「유니버시티즈·서비스·센터」를 이용함으로써 중공을 탐구했던 것이다.
「하버드」대학은 「포드」 보조금에 따라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이 가운데도 64세의 역사가이며 정부상담역인 「존·킹·페어뱅크」 박사는 특히 유명하다. 젊은 학자들은 그를 「존」왕이라고 부를 정도 또 역사가 「벤저민·수어츠」는 공자의 사상에서부터 모택동의 득세에 이르는 광범위한 문제를 연구하며 「에즈러·포걸」은 중국사회학분야의 개척자다. 또 「제름·코헨」은 중국법전문가이며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의 고문인 사가 「제임즈·톰슨」2세는 미·중 관계분야의 기수다.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은 중국학연구소를 두고 사회과학분야에 전념하고 있다. 소장 「찰머즈·존슨」은 정기적으로 TV에서 중국과 일본의 신문에 관해 보도하고 있으며, 동 연구소의 1만8천권의 장서는 우수한 것으로서 정평있다. 한때 국무성 관리였던 「존·스튜어트·서머스」도 유명하며 12년 전 중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승인을 조언한 정치학자 「로버트·스칼라피노」는 「존슨」 행정부의 월남개입을 지지했다고 해서 젊은 학자들의 저주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반대로 모택동에 가장 동정적인 전문가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은 사회학자이며 역사가인 「프렌츠·셔먼」이다. 「셔먼」의 『중공의 이념과 조직』(1966)은 충분한 자료를 통해 중국본토의 공산화과정을 설명함으로써 학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스탠퍼드」대학에는 중·소 관계전문가이며 사가인 「마크·맨컬」이 있다. 또 정치학자 「존·루이스」와 모택동 연구가인 경제학자 「존·거를리」가 같은 대학에 있으며, 모택동에 중국의 거대한 지방조직들을 더욱 전통적인 크기의 농업단위로 세분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는 인류학자 「윌리엄·스키너」도 이 대학에 있다.
「미시건」대학은 앞으로 「닉슨」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갖게 될 중국학자를 배출했다. 오는 9월 34세의 정치학자 「리처드·솔로먼」은 「헨리·키신저」의 참모가 될 것이다.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에서 중국관측자였던 「앨런·휘팅」은 아직도 「키신저」와 비공식으로 만나 백악관정책에 조언하고 있다. 「알렉산더·엑스타인」은 중국경제학의 전문가로 중공경제는 요즘 문화혁명으로 입은 불안에서 크게 회복됐다고 설명한다.
「컬럼비아」대학에서는 문학사가 「윌리엄·드·베리」와 번역가이며 평론가인 「머튼·워트슨」이 고전적 중국문학전통에 관한 자료를 모아왔다.
정치학자 「도널드·클레인」은 현재의 중국지도층에 능통하며, 「에드먼드·클루브」는 1950년까지 북평주재 총영사였었는데 새로운 미국의 대중공활동에 대한 논평을 제기하고 있다. 「마이클·옥슨버그」는 중공에서의 관료체제에 관해 연구하고있다.
「워싱턴」대학에는 오랫동안 장개석편의 학자들을 많이 낸 곳으로 알려졌는데 아직도 미국의 대중공접근에 회의적인 학자들이 있다.
사가 「조지·테일러」는 『「닉슨」의 중공방문은 중공과의 흥정에 있어서 미국의 입장을 약화시켰으며 국무장관의 방문으로 족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민인 사가 「빈센트·시」는 내정부패에 대한 농민들의 반동인 북평천국의 난에 대한 대대적인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시카고」대학의 정치학자 「당·추」는 2차 대전 중의 중국에 대한 미국의 몰이해를 분석했고, 사가 「핑티·호」는 사회변동과 인구추세의 전문가이며 「독·바네트」는 중국정부와 대외정책에 전문가다. 그는 『고립 아닌 참여』의 중공정책을 오래 전에 주장했었다.
미국의 중국학자들은 자주 모임을 갖고 중국의 이념·정치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최근 중공을 방문하고 돌아온 15명의 대학원생들처럼 친중공파의 학자들도 있다.
「위스콘신」대학의 정치학자 「에드워드·프리드먼」과 「워싱턴」대학의 사학자 「마크 ·셀든」은 최근 『미국의 「아시아」』라는 수필집에서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비판한다. 또 농업전문가 「윌리엄·힌튼」의 『판셴』이나 언론인 「에드거·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같은 것이 모두 이 계열이다.
「브루킹즈·인스티튜선」의 「머튼·핼프린」이 「맥나마라」와 「러스크」가 임표를 새로운 「히틀러」로 인용하던 시절로부터 「닉슨」과 「키신저」의 시대로 나간 것은 굉장한 변화』라고 말하듯이 중국학자들의 입김은 미국정부의 정책에 큰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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