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보호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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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던 왕을 서양에서는 「루이」14세로 보고 있다. 이때의 재상 「리셸리류」 말에 이런게 있다. 『누가 쓴 어떤 글이라도 두 줄만 읽으면 교수형을 선고하기에 충분한 구실을 찾아낼 수 있다.」
아무리 절대군주라도 구실이 없으면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못한다-. 이렇게 좋게만 볼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왕에게 밉게 보인 사람이라면 우선 잡아놓고 보면 단죄의 구실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17세기의 영국도 다를 바 없었다. 적어도 왕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프랑스」에도 없던 의회가 영국에는 있었다. 또 그 힘은 차차 왕을 견제할 수 있을 만큼 커졌다. 「제임즈」 왕의 힘을 꺾으려는 의회는 우선 근의 총신 「라우드」를 대역죄로 몰았다. 그러나 그만한 구실을 찾을 길이 없던 의회에서는 수없이 자질구레한 구실들을 긁어 모았다.
『2백 마리의 검은 고양이가 모여서 한 마리의 검은 말이 된다는 얘기는 내 평생에 처음 듣는 얘기다.』-「라우드」가 단두대에 오르기 전에 한 항변이었다.
이줄 전후해서 의회가 왕에게 강요한게 1628년의 권리청원이었다. 그 골자는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나 법의 정당한 수속 없이…체포, 감금…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 것이 1679년의 유명한 인신보호법(헤아비어스·코퍼스)이었다. 「헤이비어스·코퍼스」(habeas corpus)란 법정 또는 판사 앞에 『신원을 제출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뜻을 명령하는 국왕의 영상을 인신보호영장이라한다.
원래 이것은 재판의 원골한 진행을 돕기 위해 당사자·배심원들의 신원을 구속하여 그 출정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게 뒤에 왕권을 대표하는 황실재판소에 잡혀간 사람들을 빼내기 위한 소중한 무기가 된 것이다.
근세 이후로는 인신보호법은 민주헌법의 부가결의 골격으로 되어있다. 미국헌법에도 이게 들어있다. 반난이나 침략의 경우처럼 공공안정상 부득이 할 때 이외에는 정지될 수 없다는 단서까지 붙어있다.
그러나 인신보호법을 정지시키는 권한은 행정부에 있는 게 아니라 입법부에 있다고 보고있다. 1863년 남북전쟁 때에도 의회의 승인아래 대통령이 동법을 정지시켰었다.
신민당에서 인신보호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얘기가 있다. 우리 나라엔 아직까지도 이런 법이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신통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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