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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검사 몽골피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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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런던 특파원

“이번 주 금요일 그가 퇴직한다.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고 누군가는 차가운 미소를 머금겠지만, 대다수 국민에게는 ‘정의’가 충직한 기사 한 명을 잃는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6월 말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의 한 기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정의의 사도로 불린 주인공은 프랑스 중부지방 부르주의 검찰국장 에리크 드 몽골피에(67)였다. 그는 아마도 프랑스인 상당수가 이름을 아는 유일한 검사일 것이다. 그를 제외하고는 이 나라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검찰 간부나 검사를 본 기억이 없다. 프랑스는 검찰 인사 발표에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는 ‘선진’ 사회다.

 몽골피에는 1994년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가 5년 연속 우승을 한 직후 그는 구단주 베르나르 타피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에서 상대팀인 발렌시엥의 선수 세 명을 매수하도록 지시한 혐의가 포착된 것이었다. 구단주 타피는 전직 장관이자 세계적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의 당시 소유주로 프랑스 정·재계와 스포츠계의 거물이었다. 프랑스인들은 구단 간부 선에서 꼬리가 잘리며 수사가 흐지부지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발렌시엥 검찰국(프랑스에선 검찰이 법원 내의 조직으로 편제돼 있다)의 검사인 몽골피에는 악착같이 증언을 받아냈고, 타피는 결국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몽골피에는 조사받으러 온 타피가 “여기 오기 직전에 엘리제궁에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만났다. 다음번에는 당신 얘기를 잘 해주겠다”며 거드름을 피웠다고 회고했다.

 몽골피에는 이후 판사들이 규정을 무시하고 재판을 계속 미루거나 수사 기록을 없애는 방법으로 기소된 재력가들을 비호해온 사실을 들춰내 프랑스 사회를 다시 한 번 발칵 뒤집어 놓았다. 검사가 법원의 비리를 파헤친 전례는 없었다. 그는 니스 검찰국에서 일하던 2009년에는 스위스 HSBC 은행의 비밀계좌 내역이 든 콤팩트디스크를 입수해 프랑스 부자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그가 전직 은행원의 부친 집에서 찾아낸 이 자료는 프랑스에서 8000여 명에 대한 세무조사와 수사, 자진 납세로 이어졌다.

 몽골피에는 평생 지방을 전전했다. 자크 시라크 정부와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는 이 ‘꼴통’ 검사를 변방에 꽁꽁 묶어뒀다. 타피와 사르코지는 서로를 친구라 부르는 사이이다. 그러다 정년 퇴직을 1년 남겨놓은 지난해 사회당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뒤 지방 검찰국장(한국의 검사장에 해당)으로 승진했다. 그는 최근 언론에 “승진 발령을 사양하려다 내가 세상을 뜬 뒤에 아내가 받을 연금의 액수를 생각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퇴직 뒤에는 형사·사법적 정의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검찰의 멈추지 않는 소란을 보며 몽골피에가 떠올랐다. 퇴장할 때 찬사가 쏟아지는 멋진 검사를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

이상언 런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