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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 닮은 섬 섬 섬 … 예향은 뱃길 따라 흐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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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아트 투어의 ‘성지’로 불리는 섬이다. 인구 3000여 명의 이 작은 섬은 오로지 문화의 힘으로 다시 태어났다. 문화는 섬의 풍경을 바꿨고, 섬을 여행하는 방식을 바꿨고, 나아가 바다에 기대어 살던 주민의 일상을 바꿨다. 지금 나오시마를 중심으로 세토내해(瀨戶內海) 곳곳에서 세토우치 국제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그 현장을 week&이 다녀왔다.

근대화의 그늘 덮은 국제예술제

세토내해부터 설명하자. 세토내해는 일본 본섬 혼슈(本州)와 시코쿠(四國) 사이에 낀 기다란 바다다. 커다란 두 섬을 잇는 바다에 3000개가 넘는 작은 섬이 떠 있다. 우리 다도해처럼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하여 바다 전체가 일본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그 수많은 섬 가운데 나오시마도 있다. 세토내해 동쪽에 있고, 시코쿠 가가와(香川)현 소속이다.

이 작은 섬에 일본의 교육기업 ‘베네세’가 박물관을 지었다. 1992년 개장한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이다. 미술관과 호텔을 겸비한 베네세하우스 개장 이후 나오시마는 문화의 섬으로 거듭났다. 1997년 나오시마에 있는 폐가를 현대미술 작품으로 개조하는 ‘이에(家)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지추(地中)미술관(2004년)과 이우환미술관(2010년)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마을·항구·언덕 가리지 않고 나오시마 곳곳에 미술작품이 들어섰다.

나오시마의 변신은 이웃한 섬에도 확산됐다. 2008년 이누지마(犬島)에서 아트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2010년 데시마(豊島)에 데시마미술관이 개장했다. 모두가 베네세 그룹의 후원과 지원 속에 이뤄진 작업이다. 지금까지 베네스 그룹이 이들 섬에 들인 돈은 600억 엔(약 6500억원)에 이른다.

예술작품이 들어선 섬들은 오랜 세월 일본 근대화의 그늘과 같은 존재였다. 데시마는 1975년부터 16년 동안 기업들이 남몰래 산업폐기물을 파묻던 버려진 땅이었다. 데시마는 아직도 일본에서 최악의 산업폐기물 투기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기억된다. 이누지마에는 1909년부터 10년간 운영되다 문을 닫은 구리제련소가 지금도 흉물로 남아 있다. 1917년 미쓰비시(三菱)사가 건설한 중공업단지가 들어선 나오시마에서는 단지 안에 있는 구리제련소에서 70년이 넘도록 각종 폐기물을 쏟아냈다.

2010년 나오시마를 비롯한 세토내해의 섬 7개가 참여해 세토우치 국제예술제가 열렸다. 국제 예술행사를 치르면서 세토내해의 섬은 아트 투어의 신흥 명소로 떠올랐다. 전 세계 18개 나라에서 예술가 75개 팀이 참가했고, 축제가 열린 105일 동안 94만여 명이 축제를 방문했다.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3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한 번 축제가 열리면 봄·여름·가을 세 계절에 나뉘어 한 달쯤 이어진다. 올해는 24개 나라에서 예술가 210개 팀이 참가했고, 세토내해에 있는 12개 섬과 2개 항구에서 축제가 진행된다. 올 가을 축제는 지난 5일 개막했고 다음 달 4일 폐막한다. 가가와현에 따르면 올해 열린 봄·여름 축제 방문자는 51만여 명이었다.

세토내해 아트 투어의 진원지 나오시마

세토내해 아트 투어는 섬을 하나씩 방문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옹기종기 모여 있어 다른 섬으로 이동하는 데 한두 시간이면 족하다. 세토내해 아트 투어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나오시마다.

가장 핵심이 되는 시설은 베네세하우스와 지추미술관이다. 두 곳 모두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작품이다. 아니, 나오시마 전체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다. 안도 다다오는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과 함께 1987년부터 나오시마 개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안도 다다오는 나오시마 지도를 펼쳐놓고 작품을 구상하고 배치했다.

역시 놀라운 곳은 지추미술관이다. ‘땅속에 있다(地中)’는 이름처럼 안도 다다오는 거대한 미술관 건물을 해안 언덕 안에 묻었다. 사실 지추미술관만 땅속에 묻혀 있는 게 아니다. 섬 곳곳에 설치된 안도 다다오의 작품은 섬의 야트막한 언덕과 둔덕이 그려내는 부드러운 곡선을 해치지 않는다. 땅속에 들어가 있거나 자연이 빚어낸 곡선과 극적인 조화를 이룬다.

미술관은 오로지 작가 세 명의 작품 7점만 전시한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세 점이 있고, 미국 작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 세 점, 그리고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 하나가 있다. 이게 전부다. 그러나 또 전부는 아니다. 개별 작품은 안도 다다오의 미술관 건물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안도 다다오는 작품을 먼저 고려해 건물을 설계했다.

이를테면 모네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은 온통 하얀색이다. 천장을 통해 햇빛이 비스듬히 스며들고 전시장 바닥은 작은 주사위처럼 생긴 지름 2㎝의 대리석 70만 개가 깔려 있다. 이로써 모네의 작품은, 다른 조명기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천장에서 들어온 햇빛과 벽과 바닥에서 반사된 햇빛을 통해서만 밝혀진다. 날씨에 따라 모네의 작품이 달리 보이는 까닭이다. 빛에 민감했던 인상주의 작가를 위한 배려였다.

이에 프로젝트는 흥미로웠다. 버려진 민가를 미술작품으로 개조해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동네 목욕탕 안에 미술작품을 설치한 ‘아이러브유 I♡湯(일본어로 ‘목욕’은 ‘유’라고 발음된다)’는 흥미로웠고, 절대 암흑을 경험하는 제임스 터렐의 ‘달의 뒤편’이란 작품은 충격적이었다.

사진 촬영을 엄격히 통제하는 건 아쉬웠다. 건물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도 촬영이 금지됐다. 정확히 말해서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건 가능했지만, 사진을 매체에 싣는 건 복잡한 절차를 통과해야 했다. 그것도 베네세 그룹이 제공하는 사진만 게재가 가능했다. 눈앞에 펼쳐진 감동의 장면을 사진으로 전달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

●여행정보=세토내해 아트 투어는 가가와현 다카마쓰(高松)를 기점으로 삼는 게 편하다. 나오시마·데시마·쇼도시마 세 섬 모두 다카마쓰에서 수시로 배가 뜬다. 가가와현은 예부터 우동이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사누키 우동의 고장이 가가와현이다. 아시아나항공이 1주일에 세 번(화·목·일요일) 다카마쓰 직항을 운항한다. 다카마쓰에서 돌아오는 항공편은 화·금·일요일 출발한다. 여행사 패키지 상품도 있다. 문화예술 단체나 지방 공무원 답사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도 인기다. 이른바 예술교육 여행이다. 오마이호텔(02-725-3399)·인터파크투어(02-3479-4207)·웹투어(02-2222-6605) 등이 관련 상품을 운영한다. 문의는 가가와현 한국사무소 브라이스트스푼(japaninside.co.kr) 02-755-1266.

나오시마(일본) 글·사진=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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