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현지 르포] 아랍권 민심은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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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지역 신문.방송들은 이라크전쟁 관련 소식을 연일 톱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요르단에서 만난 대부분의 아랍 주민들은 이라크 전쟁에 회의적이었다.

주민들의 견해는 "후세인은 나쁜 사람이지만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는 반대한다"로 모였다.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중동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더욱 박해하게 될까봐 두렵다는 이유에서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 시내 번화가에서 이동전화 대리점을 운영하는 요르단인 무라드 자비르(36)는 이라크 공격설이 나오면서 매출이 부쩍 줄었다고 불평했다.

자비르는 "이곳에서 전쟁 공포가 언제 사라질지 답답하다"며 "무슨 이유가 됐든 사람이 죽는 전쟁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후세인 정권은 독재정권이지만 그건 이라크와 아랍의 문제다"며 미국의 개입에 강한 반감을 표시했다.

암만 중심가인 압달리에서 요르단-시리아 국경을 오가는 택시를 운전하는 마진 자이단(39.시리아인)은 "석유를 노리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 위협에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우리 같은 서민들"이라며 "책임을 느끼고 국민을 위해 물러나야 할 후세인은 전쟁 준비를 통해 더욱 힘이 커졌다"고 했다.

아랍인들은 미국 주도의 전쟁이 아랍민족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도 갖고 있다. 1948년의 제1차 중동전쟁 이후 요르단에 정착했다는 팔레스타인 출신 라마단 가님(70)은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면 팔레스타인인들이 미국의 우방인 이스라엘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암만의 대중식당 종업원 이마드 알리시(26.이집트인)도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이고 공정한 해결은 물 건너간다"고 주장했다.

걸프 지역의 아랍인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쿠웨이트 항공 정비 기술자인 쿠웨이트인 자라흐 알자피리(42)는 "우리를 공격한 사담 후세인을 증오한다"면서도 "미국이 아랍을 지배한다면 옛날에 겪었던 식민지시대가 다시 부활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관광차 요르단에 입국한 사우디아라비아인 아흐마드 무스타파(37.경찰관)도 "나는 정치는 싫어하지만 미국이 우리 영토에 주둔하는 데는 반대"라고 했다.

먼 모로코에서 왔다는 파티마(22.여)조차 "미군이 이슬람영토를 점령하는 것은 치욕"이라며 "요즘 모로코 대학과 거리에서는 매일 반미.반전시위가 열린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부친이 투자한 암만의 예루살렘 호텔에서 부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는 우마르 알주바이디(23.레바논인)는 역사적인 경험을 예로 들었다. "과거 레바논 사태에 미군이 개입했지만 내전을 장기화하는 결과만 가져왔다.

이슬람교도와 기독교인이 대립하는 레바논처럼 수니파.시아파.쿠르드족 간 갈등이 심각한 이라크에서도 외부 세력의 개입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일부 국가는 미국이 자국 영토를 이라크 공격의 전초기지로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등 아랍국 내에도 입장 차이가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의 공격 움직임을 이용해 자신들의 안보를 위협해온 '독재자'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속셈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아랍인들은 국가의 외교.군사정책과는 별도로 아랍 '형제'들에 대한 우정을 바탕에 깔고 판단했으며, 당연히 전쟁에 비판적이었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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