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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로 치면 골문 앞 찬스" … 문, 친노 결집 겨냥한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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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왼쪽)가 23일 오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싶은 민주당의 속내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같은 날 선거 지원을 위해 포항을 방문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오른쪽)는 민주당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윤석열 전 수사팀장을 특임검사로 임명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전권을 주는 게 사태를 정리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뉴시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그간 국정원 댓글 사건과 거리를 둬왔다. 지난 6월 기자단과 산행에서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언급했지만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순 없다”고 말했다. 김한길 대표가 지휘한 장외투쟁에도 문 의원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선에서 박 대통령과 경쟁한 당사자가 직접 나서 시비를 따지는 것이 대선불복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걸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3일 문 의원의 성명은 지금까지의 대응과는 결이 다르다.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로 명확히 규정한 점, 부정선거의 수혜자를 박 대통령으로 지목한 점이 그렇다. 윤건영 보좌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상황이 변했다”며 상황 논리를 댔다. 그는 “국군과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이 총체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했고, 더불어 전 정부의 일을 현 정부가 수사압력 등으로 은폐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의 성명은 당 중진과 지도부의 잇따른 강경 발언과 함께 나왔다. 정세균(5선)·박지원(3선)·설훈(3선) 의원 등 중진들은 지난 22일 “대선불복 논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난 대선에 부정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도 23일 “국정원·국군사이버사령부·국가보훈처·경찰이 합작한 ‘3국1경’ 부정선거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다”며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했다.

 그래서 문 의원과 민주당의 대응을 ‘새누리당의 프레임’을 깨기 위한 합동 작품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윤석열(현 여주지청장) 전 수사팀장의 배제가 수사팀에 대한 압력이 아닌 검찰 내 세력 간 갈등으로 부각되는 것이 민주당으로서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사건을 이렇게 몰고가는 프레임을 깨기 위해 그간 기조나 원칙(대선불복 부정)보다 훨씬 강한 발언을 의도적으로 터뜨린 것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서 “대선불복 주장도 피하는 것보다 정면으로 뚫고 나가는 게 더 효과적일 거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병두 본부장은 “충격요법이 아니라 분명한 상황규정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 국면이) 야구로 치면 7회 말까지 왔고, 축구로 치면 (민주당이) 문전 찬스를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민주당이 국민에게 ‘대선이 부정선거가 맞고,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기 전 당 지도부와 논의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핵심 당직자는 “문 의원이 지도부에 성명을 낸다는 사실을 알려온 것은 맞다”면서도 “문 의원과 메시지나 전략을 공유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부에서는 선수가 직접 경기의 공정함을 따지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불만도 있다”고 했다.

 문 의원의 계산은 민주당보다 복잡해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화록 수사와 김한길 대표 주도의 장외투쟁 국면을 거치면서 친노무현계가 힘이 많이 빠진 상황”이라며 “문 의원이 ‘검찰은 나를 소환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이번에도 박 대통령과 분명한 각을 세운 건 리더로서 자기 세력의 침체기를 끝내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파의 리더로서 지지세력의 결집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고도 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이슈는 책임자라는 측면에서, 국정원 이슈는 대선불복 문제 때문에 문 의원에게 좋을 게 없는 이슈였다”며 “문 의원으로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사안이라면 여러 의혹이 불거진 지금이 현안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시점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글=강인식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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