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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혁 때 숨죽인 클래식 팬, 그들을 선율로 보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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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8일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정경화(오른쪽)가 세 곡의 앙코르 곡을 연주한 뒤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CMI]

무대 앞자리는 흰머리가 성성한 노관객들 차지였다. 수수하지만 단정한 차림의 60~70대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눈을 감고 연주에 몰입했다. 격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가슴에 손을 얹거나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음악이 이념의 선전 수단에 불과했던 1960~70년대 사회주의 중국. 그 시대 클래식은 부르주아계급의 사치로 내몰렸다. 사람으로 치면 풍찬노숙(風餐露宿) 신세였다. 그 시절 그들은 정경화를 만났다. 1970년 녹음한 정경화의 차이콥스키 협주곡 음반이 홍콩과 중화권 화교를 통해 중국으로 흘러들어왔다. 애호가들은 카세트 테이프로 복사해 돌려들었다.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도 굽히지 않은 음악에 대한 경의.

 무대의 노연주자와 객석의 노관객들은 40년 세월을 뛰어넘는 음악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품었다. 지난 18일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5)씨가 중국 순회 연주의 첫 무대를 열었다.

 “1970년 나온 차이콥스키 협주곡 음반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대요. 뭉클하지 않으세요. 정말 열정적인 음악 애호가들이예요.”

 정씨는 베이징을 비롯해 상하이·홍콩·타이베이 등 중화권 7개 도시 순회 연주 중이다. 2002년에도 그는 중국에서 활을 켰다. 당시만 해도 ‘문혁’의 그림자가 덜 가셨는지, 클래식 연주장 분위기는 지금 같지 않았다고 한다. 감격에 겨워 눈물 훔치는 노관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 국민의 정서, 삶의 질이 변화한 것과 함께 이젠 중국의 클래식 하드웨어의 힘이 느껴진다”고 정씨는 말했다. 2008년 올림픽을 거치며 중국은 최고 수준의 공연장을 내놓았다. 올림픽 직전 개관한 국가대극원 얘기다. 중국을 찾는 해외 연주자들의 연주 음향을 완벽에 가깝게 지원하고, 무대도 관객과 편안히 소통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연주자들 사이엔 세계 최정상급 공연장으로 꼽힌다.

 정씨는 자연스레 국내 공연장의 문제를 꺼냈다. 목소리가 높았다. “예술의전당은 소리가 뭉개져 기교를 마음껏 드러낼 수가 없어요. 중국의 국가대극원 같은 전용 공연장은 미래의 유망주들이 자라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죠.”

 이번에 연주한 국가대극원은 어땠을까. “음향의 질감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어요. 현 한 줄을 길게 켤 때 그 소리의 공명 때문에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2005년 손가락 부상 이후 5년간 악기를 손 대지 못했던 정경화는 자신의 기교를 맘껏 뿜어낼 수 있는 국가대극원의 음향 지원에 대해 흡족해 했다. “현이 감기는 느낌. 음향을 갖고 실컷 놀아봤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는 중국 노관객들과 교감하며 느낀 행복감을 인터뷰 내내 얼굴에서 지우지 못했다. “이렇게 퀄리티 높은 음향 시설에서 실연주를 들으면 저의 음악을 오랫동안 기억하지 않겠습니까. (18일 무대에서) 제가 얼마나 신명나게 연주했는지 모르실 거예요.”

베이징=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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