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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과의 대화|오랜 친교의 미「에드거·스노」기자 회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중공의 탁구 외교는 모택동과 오랜 친분이 있는 미국의 「에드거·스노」기자가 적어도 계기의 하나를 조성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스노」기자는 중공의 미 탁구 「팀」초청 얼마 전에 중공을 방문, 모택동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영국의 근착 「선데이·타임스」지에 실린 「스노」기자의 모택동 대화기를 간추린다. <편집자 주>
모택동은 「인터뷰」가 아니라 그냥 대화를 나누자고 전해왔다. 자금성의 서쪽 대문을 통해 들어가 수풀로 둘러싸인 길을 한참 들어가니 과히 크지 않은 구식 단층집이 나타났다.
모는 그의 서재 입구에 서서 나를 맞았다. 우리는 함께 아침 식사를 나누면서 하오 1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먼저 중공의 개인 숭배 풍조를 시인한 65년 당시의 그의 발언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당시 생과 현의 당 위원회와 북평시 당 위원회의 선전 기구에는 자기의 힘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의식적으로 군중을 선동, 반 모파 당료를 몰아내기 위해 자기에 대한 개인 숭배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풍조가 너무 지나쳤다고 자인하고, 3천년 동안이나 천자 숭배 사상에 젖어온 민중들의 생각을 고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모는 또 산아 제한을 찬성했다. 시골 여자들이 아들을 낳을 욕심으로 자꾸 아이를 낳다가 딸만 아홉을 낳은 경우를 예로 들어, 그는 이를 나쁘다고 했다.
이야기가 미국의 여성 해방 운동에 이르자, 모는 현재 남녀간의 완전한 평등은 성취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그대신 미국과 중공 등 국가간에는 꼭 평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을 돌렸다.
앞으로 미국과의 인사 교류를 고려한다고 말한 그는 「닉슨」대통령 같은 우익 인사의 중공 방문도 환영한다고 명백히 말했다. 그 이유로는 현재로서는 미·중공간의 현안 문제는 「닉슨」대통령을 상대로 해서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닉슨」대통령이 중공과의 화해의 뜻을 처음으로 털어놓은 상대방은 「드골」이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뮈르빌」씨가 주선한대로 「드골」의 중공 방문이 실현되었다면 이 문제에 큰 진전이 있었을 뻔 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침략한 덕택 (?)으로 중국인들이 혁명 투쟁과 사회주의를 채택하게 됐다고 역설적인 말을 한 모는 이어서 문혁 과정의 잘못된 점을 비판, 다음의 두 가지를 들었다. 즉 입으로는 강제적 폭력이 아닌 이성으로 투쟁해야 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상 밑으로 상대방에게 발길질을 해대고도 시치미를 떼는 위정자와 탈권 당한 당료들에 대한 학대가 몹시 못마땅했다고 했다.
그리곤 옛날의 중공군이 국부군을 사로잡은 뒤 여비까지 대주면서 풀어줌으로써 그들이 중공 쪽으로 합세하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소·중공 분쟁에 관해 모는 소련이 엄지 손가락만한 핵을 보유하는데 겨우 새끼 손가락만한 핵밖에 못 가진 중공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중공이 거리에 참호만 파도 놀라는 그들이 만약 중공인들이 참호 속에 뛰어든다면 어쩔 셈이냐고 반문했다.
이념 분쟁도 소련이 먼저 중공을 향해 교권주의자라고 말했기 때문에 중공도 그들을 수정주의자라고 응수한 거라고 말한 모는 논쟁이란 1만년이라도 계속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서도 소련과는 국가와 국가로서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소련은 저희들만이 호령을 하고 남들은 복종해야 할 줄 믿지만, 그렇게는 안될 것이라고 말한 모는 오히려 미국의 지방 분권주의와 각 주의 자치를 배울만한 제도라고 추켜 올렸다. 끝으로 그는 한마디 자신에 대한 말을 덧붙였다. 그는 단지 구멍이 뚫려 비가 새는 우산을 받고 걸어가는 한 고독한 중과 같은 사람일뿐이라는 것이다.
이 대화와 다른 비공식 정보에 따르면 나는 모가 앞으로의 미·중공 관계를 요리함에 있어 지금까지 중공을 이끌어온 외교 정책과 「이데올로기」와 세계 인식의 기본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긴장 완화의 국제적 추세에 따라 모든 중공의 우호국 그리고 적대국내의 대중공 우호 세력과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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