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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열·지열로 가동 친환경 박물관서 오감 총동원해 탐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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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호 08면

1 ‘무제 박물관’ 신관 외관
2 박물관에 디스플레이 된 전시물들
3 산의 슬로프를 닮은 신관 외관

지난 7월 27일 이탈리아 북부 산간도시 트렌토(Trento)에 자연과학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무제(MUSE, www.muse.it). 기존 과학 박물관을 최첨단 친환경 기술을 이용해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과학 박물관으로 확 바꿔 보자며 10년 전 시작된 프로젝트가 드디어 빛을 봤다. 미셸랑 공장부지를 재개발한 이 박물관은 지상 5층, 지하 1층에 야외 열대 식물원까지 총 1만2600㎡ 규모를 자랑한다. 외형적으로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이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76)라는 점이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지구의 취약성’에 초점을 맞추고 친환경적인 건물들을 선보여 왔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2020년까지 기후와 에너지 분야에서 지속가능하고 똑똑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정책에 맞춰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활용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 형태도 역시 첨단 기기를 활용해 관람객이 쉽고 재미있게 지식 습득과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이탈리아 트렌토 자연과학박물관 ‘무제(MUSE)’를 가다

덕분에 개관 두 달 만인 9월 말 현재 전 유럽에서 1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이 박물관을 찾았다. 하루 평균 2400명이 입장하고 주말에는 3000명이 넘는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기에 한적했던 알프스 산자락으로 인파가 모여들고 있는 것일까. 중앙SUNDAY가 그 현장을 다녀왔다.

지붕엔 태양열 집열판, 빗물 모아 연못물로
밀라노에서 직행 기차가 없어 베로나에서 갈아타고 한 시간 뒤 이탈리아 최북부 트렌티노 주에서 가장 큰 도시 트렌토에 도착했다. 박물관 주변의 주차구역은 미처 공사가 끝나지 않아 아직 자갈로 덮여 있었지만 녹색 산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멋진 현대식 건물은 우둘투둘한 자갈밭을 순식간에 시야에서 내쫓아버릴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건물 외관은 마치 산의 슬로프처럼 경사졌다.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이 자연스럽게 배열돼 있었다. 또 지열 활용을 위해 트렌토 지역에서 균일하게 에너지를 분배하는 중앙 삼중 열병합 발전 시스템을 지원받았다. 이와 함께 온도 및 빛 센서에 의해 작동하는 제어 커튼과 조명, 자연 환기 시스템의 사용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빗물을 모아 수조에 저장해 두었다가 온실 열대 수족관과 화장실, 박물관 주변을 둘러싼 연못을 위해 사용하는 등 재생 에너지 사용 역시 최대화했다.

박물관 건물은 교통에 의한 오염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현지 및 인근에서 재료를 조달받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친환경 건축 자재를 분석해온 렌조 피아노 워크숍 연구결과에 근거한 것이다(실제로 이탈리아가 원산지인 이 재료들은 지구 온실 효과 억제와 Co²생산 감소에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면서 이탈리아 내에서 빠른 속도로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덕분에 트렌티노주 기술 지구 건물 프로젝트팀과 공동으로 미국 녹색건축위원회(USGBC)가 인증하는 친환경 건축 인증 프로그램 LEED(Leadership in Energy Environmental Design)의 GOLD 레벨 인증을 받았다. 천연자원 보존을 위한 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자극제가 되겠다는 무제 박물관이 전 세계에 녹색 비전의 바람직한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5 ‘무제 박물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중정과 공중에 매달린 동물박제들
4 박물관에 디스플레이 된 전시물

박제 동물들이 공중에 두둥실
역시 줄은 길었다. 한참 만에 로비에 들어서자 안내원은 5층(1층을 0층으로 표현하는 이탈리아에서는 4층)에서 내려오면서 관람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일러준다. 이렇게 봐야 알프스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변화하는 서식지들의 특성과 그곳에서 사는 생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란다.

입장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천장까지 확 트인 거대한 중앙 공간이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이 살아 있는 듯한 수많은 동물박제와 거대한 공룡 뼈들이 얇은 케이블에 연결돼 공중에 매달려 있다. 동물들은 마치 투명한 노아의 우주선에 탑승해 무중력의 우주공간에서 여행 중인 동물들 같다.

무제 박물관은 기존 박물관의 전통적인 개념을 깨고 상호 작용과 관찰을 통해 즐기면서 학습하는 공간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혁신적 기술로 설치된 모든 전시물은 방문객이 직접 참여해 실험하고 만지고 놀 수 있게 했다. 아이건 어른이건 설치물을 조작하고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찍으며 설명을 읽는 사이 과학적 이론은 이미 머릿속에 쏙쏙 들어가는 듯했다.

애플리케이션 가이드 ‘엑스플로라 무제(eXplora MUSE)’는 트렌티노 주에서 자치적으로 만든 혁신적 프로그램으로 에듀테인먼트와 소셜네트워크를 넘나드는 확실한 개인 정보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트렌토 라이즈(Trento RISE: 트렌토의 리서치 연구소)가 실행하고 그라피티(Graffiti) 홍보회사,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최초의 이탈리아 회사인 몹팜(MobFarm), 그리고 트렌토의 전문 소프트웨어 개발자 조르조 자노니(Giorgio Zanoni)가 공동개발했다. 여행객이나 가족, 연구원이나 학생 등 연령이나 문화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다. 영상과 함께 말로 읽어주는 오디오 가이드도 첨가돼 오감을 총동원한 박물관 탐험이 가능하다.

7 대형 지구본
6 터치스크린으로 기계를 작동하며 체험하는 아이, 사진 Carlotta Rizzolli

첨단 태블릿 조작하며 신나게 관람
안내원이 일러준 대로 먼저 5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박물관에서 가장 좁은 장소로 알프스 정상의 자연환경과 지리적 생물학의 관계를 잘 설명해 놓았다. 고지대 식물과 동물의 박제 및 사진,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을 접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급변하는 알프스 만년설의 3분짜리 디지털 영상도 볼 수 있다. 모든 설명은 태블릿과 터치 스크린으로 돼 있어 아이들은 아예 엄지와 검지를 쭉 펴고 다니다가 화면만 나타나면 비벼댔는데 직접 뭔가를 작동시킨다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만년설과 고지대 동물을 설명해 놓은 곳에는 실제 얼음으로 산봉우리를 만들어 놓았다. 방문객들이 진짜 얼음인지 확인해 보려 하도 만져서 얼음 이곳저곳에 벌써 손 형태의 구멍도 나 있었다. 이곳에서는 아래로 뻥 뚫린 가운데 빈 공간과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알프스 산 때문에 실제로 산 꼭대기에 올라온 듯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껴졌다.

나머지 수평면(각 층)의 넓은 공간은 과학 및 자연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4층은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알프스의 자연을 보여주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과의 관계를 설명한 곳이다. 4세에서 9세의 아동들이 부모, 혹은 각 층의 안내원들과 함께 과학적으로 자연을 학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8 ‘무제 박물관’ 식물원 9 박물관 내부 10 얼음과 자연의 관계를 설명해 놓은 섹션. 얼음에는 관광객들이 만져 깊이 파인 손바닥 자국이 가득하다 11 자연과 동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섹션. 동물 박제와 자연환경이 실제처럼 잘 어울린다

3층에서는 유네스코에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돌로미티 국립공원에서 발견된 화석과 지구의 나이를 알 수 있는 지층 구조 등을 볼 수 있다. 보석을 비롯한 각종 광물의 실물을 보고 터치 스크린을 통해 궁금한 원석에 대한 보다 상세한 자료를 얻을 수도 있다. 지진·화산·홍수·눈사태 등 각종 자연재해를 TV로 설명한 코너와 댐처럼 자연재해를 막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커뮤니케이션 코너에서는 이탈리아 통신사가 통신망의 중요성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홍보까지 겸했다.

2층의 전시품들은 인간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한눈에 보여주었다. 도구를 사용하며 불을 발견하고 문화를 발전시킨 인류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지구와 인간의 관계, 지구 환경 보존을 위한 인류의 노력 등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피부나 표정,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든 원시인 인형은 너무 잘 만들어 놓아서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영혼을 빼앗겨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층은 어린이들의 과학 천국 ‘맥시 오(Maxi Ooh!)’였다. 박물관의 가장 어린 방문객(0~5세)들을 위해 만든 이 넓은 공간은 놀이터를 방불케 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설치물들을 타보고, 쳐보고, 만져보고, 눌러보며 자연과 환경과 역사와 친해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하층에는 알프스 주변 지역에서 가장 큰 공룡 전시장이 들어서 있었다. 3300㎡에 이르는 상설 전시장으로, 이 중 500㎡는 기획전을 위해 사용한다. 이 공간은 자연스럽게 1층의 선사시대관과 연결돼 최초의 사회적 인간이 어떤 도구를 사용하며 생존했는지 보여준다. 박물관에서 가장 흥미로운 섹션 중 하나인 이곳은 인간의 손을 집중 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손을 자유롭게 사용한 덕분이라는 의미에서 손이 어떤 마술을 부리며 사용되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어 위주로 설명돼 있다는 사실은 옥에 티였다.

미켈레 란징거(Michele Lanzinger) 박물관장은 “알프스산이나 트렌토 주에서 휴가를 즐기는 가족들이 박물관 오픈 소식을 접하고 온 경우도 있었지만 박물관 방문을 위해 일부러 먼 길을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또 관람객의 80%가 이탈리아가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며 “방문객들이 박물관에서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는 탐험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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