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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명예의 전당’ 개관 … 록의 전설들 유품 가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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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호 24면

로큰롤 명예의 전당과 박물관 내 비틀스 코너 풍경. 가장 높이 걸려 있는 노란색 의상은 비틀스의 음반 ‘서전트 페퍼 론리 하트 클럽 밴드’ 표지에서 존 레넌이 입었던 것이다. [사진 조현진]

미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추신수 선수가 한때 뛰었던 인디언스팀의 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 이곳도 로큰롤이 태어난 곳이라고 크게 홍보하는 곳이다. 지난주 소개한 멤피스에 이어 로큰롤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도시다. 의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두 도시 모두 자신들이 로큰롤의 요람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 팝의 원류를 찾아 ② 로큰롤의 요람, 클리블랜드

멤피스가 선 스튜디오를 통해 대중음악으로서 로큰롤이 처음 녹음되고 대중적 인기를 얻은 곳이라면, 클리블랜드는 이런 풍의 음악을 로큰롤이라고 처음 명명한 도시다.

1950년대 초 방송인 앨런 프리드는 클리블랜드에서 음반점 ‘랑데부(Rendezvous)’를 경영하던 리오 민츠와 친분을 쌓으면서 백인 고객의 흑인 음반 구매가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클리블랜드 소재 WJW 라디오에 심야 프로그램 ‘더 문독 하우스 로큰롤 파티(The Moondog House Rock and Roll Party)’를 신규로 편성하고 DJ를 맡는다. 51년 7월 11일 첫 방송부터 리듬앤드블루스 풍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백인 청취자를 위해 흑인 음악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당시로는 생소한 편성이었는데 이 모험스러운 시도는 결국 성공했다. 프리드는 이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틀던 음악을 ‘로큰롤’이라 명명했고 이후 로큰롤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보통명사가 됐다. 하지만 프리드가 특정 음악 장르를 명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처음 쓴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로큰롤이라는 용어는 19세기부터 성적 행위를 뜻하는 흑인들의 은어로 사용됐다. 당시 발표된 여러 곡에 로큰롤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으로 볼 때 프리드가 이 용어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의 동료인 민츠가 먼저 사용했다는 주장도 개연성이 있다.

그럼에도 로큰롤이라는 단어를 보편화시키고 로큰롤 음악을 가장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프리드가 지대한 역할을 했음에는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클리블랜드시가 자신들이 로큰롤의 탄생지라고 주장하며 최대의 랜드마크인 로큰롤 명예의 전당 앞에 표지판을 세우고 지금은 사라진 WJW 라디오가 있던 자리에 명판을 제막한 것은 프리드의 업적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시다. 프리드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첫 입성 대상자를 선정 발표한 1986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지금도 박물관에서는 그에 대한 전시가 계속되고 있다.

로큰롤의 폭발, 록 페스티벌
로큰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의 여름은 이제 록 페스티벌(이하 록페)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록페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유명세나 인지도로는 67년의 몬터레이(Monterey) 팝 페스티벌이나 69년의 우드스톡(Woodstock) 페스티벌이 먼저 연상된다. 하지만 록페의 시작은 그보다도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DJ로서 클리블랜드 일대에서 인기와 인지도를 굳힌 프리드는 폴 윌리엄스와 타이니 그라임스 등 당시 인기 가수들을 한 곳으로 불러모으는 공연을 기획했다. 이 결과가 52년 3월 21일 클리블랜드 아레나(Arena)에서 열린 ‘더 문독 코로네이션 볼(The Moondog Coronation Ball)’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관심이 집중되면서 1만 명 수용 규모의 공연장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미처 입장하지 못한 2만여 명의 팬이 공연장 밖에서 아우성치며 공연장 문을 부수는 등 무질서한 모습을 보였다. 예매권 초과발행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밤 10시에 시작된 공연은 결국 대형 사고를 우려한 당국에 의해 시작되자마자 중단되고 말았다.

미완성으로 끝난 데다 무질서했던 만큼 언론은 공연 소식을 부정적으로 보도했으나 이 뉴스를 접한 음악계는 오히려 정반대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첫 로큰롤 공연에 대한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과 관심을 간과할 리 없었던 것이다.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록페와 록 콘서트, 즉 ‘공연 시장’이라는 시장이 새롭게 창출되는 순간이었다. 로큰롤이 폭발한 것이다.

당시 행사가 여러 아티스트들을 처음으로 한 곳에 모아 무대에 올린 공연이라는 점에서 ‘더 문독 코로네이션 볼’은 최초의 록페로, 적어도 최초의 록 콘서트로 기록되고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프로농구 NBA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지금도 팀의 마스코트로 문독을 쓰고 있다. 클리블랜드에 있는 WMJI 라디오 방송은 최근 중장년층을 겨냥해 연례 문독 공연을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과 박물관 외부 모습. 건물 앞에는 ‘로큰롤의 탄생지’라는 표지판이 있다.

로커의 로망, 로큰롤 명예의 전당
역사적 장소였던 클리블랜드 아레나는 1977년 헐렸고 이 자리에는 지금 미국 적십자사 클리블랜드 지부가 들어서 있다. 첫 로큰롤 공연의 소란과 굉음을 기억이나 하는지, 그 의미와 파장을 알기나 하는지 도심 외곽에 위치한 이 지역은 이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이런 역사적인 장소에 작은 기념비라도 세울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필자가 시 관광청에 제안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된다.

클리블랜드시는 1980년대 중반 이 도시가 근대에 내린 결정 가운데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과 박물관(Rock and Roll Hall of Fame and Museum·이하 록 홀)이 이 도시에 세워질 수 있도록 대대적인 지원과 서명운동을 전개해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1995년 개관한 록 홀은 로큰롤 관련 최대 규모의 박물관으로 로큰롤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다. 로큰롤 매니어라면 19개의 크고 작은 전시공간을 하루 만에 마무리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5대호 중 하나인 이리호 옆에 세워져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록 홀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하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I. M. 페이가 설계해 화제가 됐다. 주 유엔 대한민국 대표부 건물이나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등을 설계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히피 무늬로 장식된 재니스 조플린의 포르셰 스포츠카(사진 위). 지지 톱(ZZ Top)의 드러머 프랭크 비어드가 쓰던 털장식 드럼.

워낙 자료가 방대해 놓쳐서는 안 될 주요 소장품들은 특별히 표시를 해 관람을 돕고 있는데 표시가 되지 않았어도 흥미로운 전시물이 많다. 비틀스의 ‘서전트 페퍼 론리 하트 클럽 밴드(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음반 표지에서 존 레넌이 입었던 노란색 무대의상이나 지미 헨드릭스의 ‘퍼플 헤이즈(Purple Haze)’ 친필 가사지, 지지 톱(ZZ Top)의 드러머 프랭크 비어드가 쓰던 털로 장식된 드럼, 히피 무늬로 장식된 재니스 조플린의 포르셰 스포츠카 등은 인상적인 소장품이었다.

제1전시실에 입장하자마자 영상물이 상영된다. 로큰롤의 간략한 역사를 담은 12분짜리 ‘미스터리 트레인’과 명예의 전당 입성 대상자를 처음 발표한 1986년 이후 헌액된 모든 아티스트의 활약상을 짧게 편집한 100분 분량의 작품은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보물이다. 로큰롤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두 음반사의 역사를 조명하는 ‘선과 애틀란택’, 최초의 음악 전문 채널인 MTV 관련 동영상을 모아놓은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 핑크 플로이드가 공연에서 사용한 대형 소품이 전시된 ‘더 월’ 코너 역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014년 후보, 딥 퍼플ㆍ너바나 등 물망
오늘도 많은 로커들이 음반 계약이나 만석 공연을 위해 연습실에서 땀 흘리고 무대를 뛰고 있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입성 아닐까. 순간의 인기가 아니고 평생의 업적에 대한 인정이기 때문이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대상자는 앨런 프리드나 지난주 소개한 샘 필립스와 같은 ‘비연주인 부문’을 포함해 크게 4개 분야에 걸쳐 선정되는데 하이라이트는 역시 ‘연주인’ 부문이다. 연주인의 경우 첫 음반 발표 이후 25년이 지나야 후보 자격이 부여되고 후보 명단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재단이 발표한다. 인생을 길게 보라는 지혜는 로큰롤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후보들은 음악 전문가로 구성된 600여 심사위원들의 투표를 거쳐 매해 보통 5~7명(또는 밴드) 정도가 최종 선정된다. 이와 관련, 2014년 헌액 대상 후보 명단이 16일 발표됐다. 딥 퍼플과 너바나, 린다 론스타드와 피터 개브리엘을 포함해 모두 16명/팀의 아티스트와 밴드가 후보에 올랐다. 일반인도 록 홀 홈페이지를 통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데 최종 헌액 대상자는 내년 4월 발표될 예정이다.



조현진 YTN 기자, 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서울 G20 정상회의 등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드(Billboard) 한국특파원을 역임하며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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