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미네 3남매 '산골소녀 영자'처럼 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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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로 엄마(32)마저 잃고 고아가 된 초등학교 1년생 엄수미(8)양 3남매. 본지에 이들의 딱한 사연이 처음 소개된(2월 21일자 사회면) 이후 이들에게는 크고 작은 정성이 전국에서 답지했다.

이들 모두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 전액을 지원하겠다는 사업가, 매월 1백만원씩 10년간 생활비를 대겠다는 기업, 2천만원을 선뜻 건넨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는 성금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성금이 체계적으로 관리돼 이들 남매가 성인이 될 때까지 경제적인 어려움없이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산골 소녀' 영자양의 비극을 떠올리며 국민들의 정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도와줄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이번 사고의 실종자나 유가족 주변에 보상금 등을 노린 브로커들이 몰리고 있고, 어린 유족들을 납치할지도 모른다는 등의 흉흉한 말까지 나돈다.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김영화 교수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이들 3남매의 불행을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안될 것"이라며 "행정기관과 복지기관.시민단체 등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원자 모임을 만들어 번갈아 이들과 대화하고, 교사들은 학습 과정을 챙기며, 사회복지사가 이들의 집을 수시 방문하는 등 끊임없는 관심으로 아이들의 상처를 사회 전체가 나서 아물게 하자는 제안이다.

지금까지 수미양 남매에게 들어온 성금은 할머니(63)가 관리한다. 수미 엄마가 살아있을 때도 할머니가 가계를 꾸려왔다.

하지만 이들 가족에게 요즘 큰 걱정거리 하나가 생겨났다. 큰고모 순옥(42)씨는 "'도와주겠다'면서 접근해 아이들을 해치거나 금품을 챙기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소문이 마을에서 돌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북 영천시와 영천경찰서는 이달 들어 하루 몇차례씩 수미양 집 주변을 순찰한다. 낯선 사람이 집을 묻거나 이상한 전화가 오면 곧바로 연락하도록 가족들에게 당부도 해놨다.

이 지역 권순열 화남면장은 "기관장들이 수미 가족과 만나 어려움을 듣고 우선 급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자신들을 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로 보는 일부 시각에도 가슴아파했다. 셋째 고모(38)는 이날 "한번은 '헌옷을 보내겠다'는 전화가 와 사양했더니 '돈만 받는 거냐'며 비꼬더라"며 씁쓸해했다. 그는 또 아이들을 대신 키워주겠다는 제의도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한편 3일이면 2학년이 되는 수미양은 "엄마가 제일 기뻐했을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산골소녀'영자 사건=전기도 안 들어오는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화전민으로 묻혀 살던 이영자(李榮子)양은 2000년 7월 한 TV의 특집방송을 통해 아버지(이연원)와 함께 세상에 알려지면서 온갖 비극을 겪게 된다.

李양 부녀는 방송 이후 이동통신업체의 광고모델이 되는 등 유명세를 탔고, 18세였던 李양은 한 후원자의 초청으로 상경해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등 멋진 새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 2월 혼자 살던 아버지가 돈을 노린 흉악범에게 살해되고 후원자를 자처한 사람마저 李양의 돈을 빼돌리는 데 급급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李양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대인공포증에 시달리던 李양은 2001년 6월 속세를 떠나 불가에 귀의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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