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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잡지가 뽑은 1등 식당 스페인 '엘 세예르 데 칸 로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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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지로나 ‘엘 세예르 데 칸 로카’ 레스토랑 내부 모습.중정(中庭·사진 오른쪽에 보이는부분)이 있어 밝고 편안한 분위기다. 50석 규모의 이 식당에선 점심·저녁 모두 155유로(약 23만2500원)짜리와 190유로(약 28만5000원)짜리, 두 종류의 코스 요리를 주문할 수 있다. 단, 11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30분. 바르셀로나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 지로나에서 내렸다. 영국 잡지 ‘레스토랑’이 지난 4월 선정한 ‘2013년 세계 최고 레스토랑’이자 미슐랭 3스타 식당인 ‘엘 세예르 데 칸 로카(El Celler de Can Roca)’에 가기 위해서였다. 택시를 타고 행선지를 말하자 기사는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식사하러 가는 거냐”고 묻더니, “예약을 하지 않으면 100% 못 먹는다.

며칠 전에도 미국인 관광객을 데려다 줬는데 금방 다시 나오지 싶어 밖에서 기다렸더니 역시 예상대로였다. 그 사람들은 결국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며 장황하게 설명했다. ‘엘 세예르 데 칸 로카’는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밥 한 끼 먹기 위해 전 세계에서 미식가들이 몰려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적한 동네였다.

‘… 로카’는 조안(49)·조셉(47)·조르디(35) 등 로카가(家) 삼형제가 1986년 문을 열어 함께 운영하고 있다. 큰형 조안이 메인 요리를 맡고 둘째 조셉이 와인, 막내 조르디가 디저트를 담당한다. 이 중 ‘… 로카’의 ‘창의 브레인’으로 꼽히는 조르디 로카를 만났다.

-레스토랑 분위기가 참 아늑하다. 식당 옆에 바로 집이 있고, 식당과 집이 정원을 공유하고 있는 형태다.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식당 2층이 집이었고, 식당 주방이 집 주방이었다. 그래서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식당이 우리 삼형제에겐 익숙하다. ‘… 로카’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집과 식당이 붙어 있다. 이 집엔 큰형 조안이 산다. 손님들이 마치 조안의 집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으로 식사할 수 있는 환경이다.”

1 디저트를 맡고 있는 조르디 로카가 주방에서 ‘레몬향 증류수’ 얻는 장치를 보여주고 있다. “레몬 담은 물을 데워 얻은 수증기를 냉각시켜 레몬향 증류수를 만든 다음 이를 얼려 레몬향 얼음을 만들어 디저트 만들 때 쓴다”고 했다.
2 밖에서 본 ‘엘 세예르 데 칸 로카’. 담장 너머 왼쪽에 보이는 집이 오너 셰프 삼형제 중 맏형인 조안 로카의 집이고, 그 오른쪽에 붙어있는 식당 건물은 담장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3 레스토랑 테이블 위에 장식용으로 올려둔 돌멩이 3개. 로카 삼형제를 상징한다.

-삼형제가 늘 함께 일하는 게 불편할 때는 없나.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을 텐데.

“올해 ‘… 로카’가 ‘세계 최고 레스토랑’ 자리에 오른 것도 삼형제가 함께 운영한다는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1등 식당’이란 게 선정 기준이 애매하지 않냐. 삼형제가 모두 각 분야마다 최고 수준에 있다는 게 큰 가점이 됐으리라 본다. 우리 셋 다 모두 침착한 성격이어서 그동안 크게 싸울 일은 없었다. 세 명이 모두 도보 5분 이내 거리에 모여 살면서 매일 저녁 식사 서비스가 끝난 뒤 대화를 나눈다. 세 명의 기술과 요리 컨셉트가 조화를 이루려면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다. 의견이 대립될 때는 소수 의견에 따른다. 2대 1로 의견이 나뉠 때 ‘1’인 사람의 의견에 따른다는 것이다. 나머지 둘이 찬성하는 일에 반대할 때는 그만큼 확고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다.”

-식당 입구에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가 적힌 액자가 있다. 세 사람을 비유한 이야기인가.

“둘째 형 친구가 동화 ‘아기 돼지 삼형제’를 패러디해 요리하는 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만들어줬다. 우리 삼형제 분위기와 잘 어울려 전시해뒀다. ‘… 로카’의 테이블 위를 장식할 때 쓰는 돌멩이들도 우리 형제를 상징한다. ‘로카’가 ‘바위’란 뜻을 갖고 있어 테이블 위에 돌멩이를 3개씩 올려둔다. 인근 테르 강에서 주워온 돌멩이다. 돌멩이 모양이 다 둥글둥글 부드러운 것도 우리 형제에겐 의미가 있다. 서로 부딪쳐야 이런 모양이 나온다. 함께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가는 삼형제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본다.”

-요리사 선배인 부모님에게선 어떤 영향을 받았나.

“부모님은 아직도 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다. 문을 연 지 50년이 다 돼간다. 점심 메뉴 10유로(약 1만5000원) 정도 하는 소박한 식당이고, 늘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인기 많은 식당이다. 어머니(74)가 요리사, 아버지(81)는 요리를 뺀 모든 식당 일을 담당하는 ‘보스’다. 우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식당 일을 거들며 자랐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일하는 방식을 많이 배웠다. 직업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손님을 애정으로 보듬어주는 자세를 배웠다. ‘… 로카’에서도 어머니의 서비스 스타일을 따라 하고 있다. ‘고급식당입네’하며 경직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다. 손님과 눈을 마주치며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 로카’가 자리 잡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은 세계 미식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지역이다. 다섯 차례나 ‘세계 최고 레스토랑’ 자리에 올랐던 ‘엘 불리’도 카탈루냐 지역에 있었다.

“카탈루냐 지역의 지중해성 기후는 식재료 재배에 이상적인 환경이다. 좋은 재료가 풍성하니 전통적으로 요리가 발달한 게 당연하다. ‘… 로카’ 요리도 대부분 그 기본은 카탈루냐 전통 음식이다. 예를 들어 카탈루냐 지역에서 가장 흔한 요리 중 하나인 ‘판콘토마테(Pan con Tomate·빵 위에 으깬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을 올려 먹는 음식)’도 코스 요리에 포함시켰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선 구운 양고기와 판콘토마테를 함께 먹길 즐겼는데, 이를 응용해 염소 고기를 구워 아이스크림 콘 모양으로 만들고 그 속에 판콘토마테를 집어넣어 손님 상에 내놓고 있다.”

4 맛조개와 해삼·해초 등으로 만든 해산물 샐러드. 말미잘 모양의 그릇에 담아냈다. 포크 대신 핀셋으로 집어 먹는 게 이 요리의 특징이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물론 맛이다. 맛을 내기 위해 재료도 중요하고 요리사의 손재주도 중요하다. 좋은 맛을 내기 위해 몇몇 재료는 직접 키워 얻는다. 식당 근처에 밭을 조성해 배추·콩·토마토·무화과·수박·멜론·가지 등을 키우고 있다. 닭도 키운다. 계란을 얻기 위해서다. 물론 ‘… 로카’에서 필요한 재료를 직접 키워 다 충당할 수는 없다. 다분히 ‘로맨틱한’ 행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밭의 변화를 보면서 재료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좋은 맛을 내는 데 유용한 시간이 된다.”

5 야채 콩소메. 한국산 석류흑초를 넣어 상큼한 맛을 더한 차가운 스프 요리다. 배·복숭아·망고 등 과일과 각종 허브를 점을 찍듯 올려 화려하게 장식했다.

-2010년 ‘서울고메’ 참석차 방한했는데, 한국 음식이나 식재료를 접한 소감을 말해달라.

“한국의 식재료는 적은 양으로 요리의 맛을 변화시킨다. 발효 음식이란 게 한국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이다. 처음 접할 때부터 관심이 생겼다. 장이나 식초·김치 등 한국의 발효 음식에 대해 계속 연구 중이다. 현재 ‘… 로카’ 직원 중에 한국인 요리사도 있다. 그동안 식초를 넣은 야채 콩소메, 백김치를 활용한 애피타이저 등을 개발해 메뉴에 포함시켰다. 된장·간장을 사용한 적도 있다. 한국적인 식재료를 카탈루냐 지역 요리에 어떻게 응용할지가 우리 식당의 주요 연구 과제다.”

-인터뷰 도중에도 식당으로 예약 문의 전화가 계속 오고 있다. ‘… 로카’에서 식사를 하려면 얼마나 일찍 예약을 해야 하나.

“11개월 이내의 예약만 받고 있다. 매달 1일이 되면 예약 가능한 달이 한 달씩 늘어난다. 올 10월 1일에 내년 9월의 예약 접수가 시작됐고, 11월 1일부터 내년 10월의 예약 접수를 받기 시작한다. 보통 매달 1일에 새로운 한 달치의 예약이 마감된다.”

지로나(스페인) 글·사진=이지영 기자
사진=장 피에르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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