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감이 변질돼 국회 권위를 갉아먹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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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앙일보는 ‘국정감사가 민간기업 감사하는 곳인가’(10월 7일)‘628개 기관을 제대로 감사할 수 있는가’(10월 14일)라는 두 차례의 사설을 통해 국감이 기업 때리기로 흐를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그런 우려가 국감 이틀째부터 현실로 나타났다. 국회는 그제 40명의 기업인을 증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우리는 부동산임대 회사이고, (자동차를 수입하는) 한성자동차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딱 한마디만 남기고 돌아갔다. 엉뚱한 증인을 부른 것이다. 허인철 이마트 대표도 “저는 대형마트를 담당하고, 기업형수퍼마켓(SSM)인 이마트에브리데이 대표는 따로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산업통상위 의원들은 즉석에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횡포를 부렸다.

 국감의 ‘5분 호통’ 관행도 여전했다. 의원들은 무조건 ‘맞다, 아니다’는 단답형 답변을 요구했고, 기업인들이 “한 말씀 드리고 싶다”고 해명에 나서면 “시간이 없다”며 말을 자르기 일쑤였다. 증인채택으로 기업 활동이 제약받고 기업 이미지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부작용은 안중에도 없는 분위기였다. 다행히 예전과 다른 흐름도 눈에 띈다. 기업인을 무더기로 부른 정무위가 대표적이다. 김정훈 위원장은 따가운 여론을 의식해 “증인심문부터 먼저하고, 추가 질문이 없으면 증인은 돌아가라”고 배려했다.

 그러나 국감은 국감의 원래 취지대로 돌아가야 한다. 설사 일감 몰아주기나 골목상권 같은 경제민주화가 문제라 해도, 왜 정부가 제대로 감시와 감독을 못했는지 따지고 나무라야 한다. 국감을 핑계로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불러내 호통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로 인한 후유증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증인출석을 거부하고 정식재판을 통해 1000만~1500만원의 벌금만 내는 기업인들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국감이 변질되면서 국회 스스로 권위를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이제 국회는 어떻게 국감의 권위를 회복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기업인들 사이에 국회에 나가 망신당하기보다 차라리 벌금으로 때우고 말겠다는 풍조가 번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