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정감사가 민간기업 감사하는 곳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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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나라 국정감사법에는 조사 대상을 국가기관, 특별시와 광역시도, 공공기관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국정감사의 원래 목적은 국회가 정부와 공공기관을 견제·감시하고 정부정책에 대한 국회 차원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국정감사에선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정책감사는 둘째 치고, 민간기업의 총수와 최고경영자들을 대거 불러 호통을 치는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14일부터 진행되는 국정감사 증인에도 기업인이 대거 채택됐다. 올해 정무위에서만 채택한 일반증인 63명 중 59명이 민간기업인이다. 국토위는 54명을 채택했다. 그런가 하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혼자서 기업인 13명을 신청하기도 했다. 경영자총연합회(경총)에 따르면 지난해 열린 19대 국회에서 국정감사에 부른 기업인과 민간단체 대표는 145명으로 2011년(61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에 경총이 6일 ‘기업인에 대한 증인신청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그동안 국정조사에서 보여준 수준과 질도 문제다. 재계에서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불러놓고 질문은 하지 않고 호통치고 망신 주는 걸로 끝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업은 이미지의 실추로 타격을 받는다고 호소한다. 지난해 정무위 국감에 출석했던 민간기업인 26명 중 한마디라도 질문을 받은 사람은 14명. 12명에겐 질문도 없이 호통만 쳤다.

 그런가 하면 이런 민간 대상 국정조사를 하는 국회에 대해 항간의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국회가 기업총수 등을 수시로 부르자 국회 관계자들의 골프 부킹이 쉬워질 것이라든지 명절 선물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등의 의심 어린 시선도 있다. 국회의원들이 앞에선 공명심과 재벌 길들이기의 전사인 양 나서고, 뒤에선 잇속을 챙기거나 정경유착의 고리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국정감사가 기업총수들 얼굴 보기나 망신 주기가 아니라 정책감사와 민생국감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