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628개 기관을 제대로 감사할 수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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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늘부터 20일 동안 국정감사가 실시된다. 박근혜 정권의 첫 국감이다. 세종시 청사에서 진행되는 것도 처음이다. 공기업을 포함해 국가 부채가 크게 늘고 정부와 공기업 부문에서는 방만 경영과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감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특히 국회의 결산·예산 심사가 졸속이어서 국감은 이 허점을 메우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기대만큼 내실이 있을지 의문이다. 토·일요일을 제외하면 15일 동안 16개 상임위가 628개 기관을 감사해야 한다. ‘628’은 사상 최대다. 피감기관은 1997년에는 300곳에 못 미쳤으나 이후 계속 늘어 왔다. 이번에 몇몇 상임위에서는 하루 평균 4~6개의 기관을 감사해야 한다. 전형적인 ‘몰아치기’ 국감이다.

 국감 일정은 여야가 정쟁으로 오랜 시간을 허비한 끝에 서둘러 잡혔다. 짧은 준비기간에 의원들이 기관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질의시간도 의원 1인당 하루 평균 20분이 채 안 된다. 이 시간마저 정치 공방과 섞이기 일쑤다. 짧은 시간에 세간의 관심을 끌려고 적잖은 의원이 ‘호통형 질의’나 ‘묻지마 폭로’ 같은 구태에 의존할 염려도 있다.

 이번 국감에선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이 200명 가까이 된다. 기업은 이미 국세청이나 검찰, 금융감독위 같은 기관으로부터 감시와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가 국감의 칼을 과도하게 휘두르면 기업활동은 위축될 우려가 있다. 국회로서도 제한된 시간과 화력(火力)을 이런 증인들에게 분산하면 행정부 견제라는 본래 기능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과거 국감에서는 적잖은 기업인 증인들이 출석하고도 질문 한 번 받지 않아 시간낭비라는 지적이 있었다.

 국감이 ‘몰아치기’ 또는 ‘수박 겉핥기’라는 비판은 오랫동안 있어왔다. 외부에서는 물론 국회 내에서도 대안으로 상시(常時) 국감이 제시돼 왔다. 국회는 지난해 국회법을 개정해 이를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정기국회 이전에 국감을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정기국회 국감은 특별한 경우로 정한 것이다.

 사실 국정감사라는 것은 한국에만 있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은 평상시에 상임위 소위에서 행정부 책임자와 외부인을 불러 토론하고 추궁한다. 사실상 상시 국감인 것이다. 이런 ‘소위 활동 국감’은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번에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같은 경우는 피감기관이 104곳에 달하는데 의원들이 어떻게 업무를 다 파악할 수 있겠는가. 평상시에 소위를 구성해 전문적으로 기관과 이슈를 다루어야 효율적일 것이다.

 여야는 내년부터는 상시 국감을 추진해봐야 할 것이다. 상시 국감은 2·4·6월 국회가 주무대가 될 것이다.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인 만큼 여야가 상시 국감을 회피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국감은 상시적으로 하고 9월 정기국회는 결산과 예산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