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자급자족 마을, 서울에 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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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원자력발전 비중 감축을 결정하면서 앞으로 전기료가 현재보다 훨씬 오를 전망이다. 이를 대비해 서울시와 노원구가 ‘제로에너지 주택 단지’를 건설한다. 제로에너지 주택은 난방·냉방·급탕·조명·환기를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집이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14일 “노원구 하계동 부지(1만7200㎡)에 화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제로에너지 주택 단지를 2016년 완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원구청은 제로에너지 주택 건설을 위해 서울시·명지대와 손잡았다. 총 442억원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에 노원구는 부지를 제공하고 관련 기술 개발은 명지대가 맡는다. 서울시와 노원구가 건축비 202억원을 부담하고 정부와 업체로부터 연구비 240억원을 지원받는다. 공동주택 3개 동(106가구), 단독주택 2개 동(2가구), 3층 연립주택 1개 동(9가구), 땅콩주택 2개 동(4가구), 모형주택 1개 동 등 총 122가구가 살 수 있는 규모다. 영국 런던의 베드제드(Bedzed), 독일 프라이부르크 주거단지 등 선진국엔 제로에너지 주택 단지가 이미 건설됐지만 국내에선 최초다.

 제로에너지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열이다. 집 전체를 ‘보온병’처럼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벽면부터 일반 주택과 다르게 시공한다. 제로에너지 주택의 외벽 두께는 50㎝로 일반 주택(30㎝)보다 1.5 배나 두껍다. 내부에 들어가는 단열재 두께만 30㎝에 이른다.

 창문도 흔히 사용되는 2중 유리창 대신 유리를 세 장 덧댄 3중 유리창이 사용된다. 유리 사이엔 열전도율이 낮은 아르곤가스를 채운다. 창틀이나 벽 틈 사이로 새는 에너지가 없도록 기밀테이프를 발라 밀봉한다. 집주인이 창문을 열지 않는 한 외부 공기가 유입되지 않는다. 집안 환기는 폐열회수환기 장치가 맡는다. 이 같은 기술로 겨울철 난방 에너지의 90%가 절감된다.

 집 안은 태양열을 이용해 덥힌다. 모든 주택은 남향으로 설계한다. 지붕은 물론 벽면까지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다. 공동주택의 동 간 간격을 건축법보다 1.2배 넓혀 층수와 관계없이 태양광 발전이 가능하게 설계했다. 이외에도 지열을 사용하는 보일러와 펠릿보일러도 들어간다. 펠릿보일러는 나무 잔가지와 폐목재를 톱밥으로 만들어 연료로 사용한다.

 서울 등 주거밀집지역에선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60%가 건물에서 나온다. 유럽에선 이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제로에너지 주택을 활용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선 2009년부터 모든 건물을 제로에너지 주택 형태로 설계해야만 건축 허가를 내주고 있다. 명지대 이명주(건축학과) 교수는 “경제발전을 고려했을 때 산업체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주택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면 국가 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입주자의 에너지 비용도 크게 줄어든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59㎡(18평)에 거주하는 4인 가족이 1년간 낸 전기·가스비는 78만7000원이었다. 이 중 TV 등 가전제품 몫으로 부과된 금액은 15만7000원이다. 제로에너지 주택은 전기제품을 사용한 만큼만 돈을 내면 된다. 한 달에 1만3000원 정도다. 2016년 완공될 예정인 주택 단지에는 신혼부부·대학생·1~2인 가구 등 도시 근로자들이 우선 입주할 예정이다.

강기헌·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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