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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졌던 진짜 전쟁영웅, 종군기자 추적으로 뒤늦게 훈장 … 명예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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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위는 부상병을 부축한 채 의료헬기에 신호를 보냈다. 경황이 없어 헬멧도 쓰지 않았다. 헬기가 내려서자 대위는 피 흘리는 부상병을 태웠다. 적군의 총탄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부상병을 헬기에 태운 대위는 찰나의 순간 부상병의 머리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그러곤 다시 총탄이 쏟아지는 전장으로 몸을 돌렸다.

 2009년 9월 8일 아프가니스탄 간즈갈 계곡에서 벌어진 전투의 한 장면이다. 대위의 이름은 윌리엄 스웬슨(34·사진). 스웬슨 대위의 감동적인 전우애는 의료헬기 조종사인 케빈 두에르스트 병장의 헬멧에 장착된 카메라 속에 담겨 4년1개월 만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국경수비대원이 된 두에르스트는 당시를 “진한 동료애였다. 영원히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스웬슨 대위가 1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는다. 스웬슨 대위의 공적은 역사 속에 묻힐 뻔했다. 미군과 아프간 연합군 수십 명이 전사한 간즈갈 전투가 끝난 뒤 그가 상부의 조치를 강력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과 아프간 연합군은 U자형 계곡에서 매복한 탈레반으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았다. 그는 “전투기나 포대 지원을 요청하는 무전을 수차례 보냈지만 묵살당했다”며 “후방에서 지휘부가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는 사이 소중한 내 병사들이 죽어갔다”고 거칠게 항의했다. 상부에 밉보인 스웬슨 대위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대신 간즈갈 전투의 영웅 칭호는 해병대의 다코타 마이어 병장에게 돌아갔다. 마이어 병장은 13명의 미군과 23명의 아프간 병사를 구출하는 데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2011년 9월 명예훈장을 받았다. 훈장을 받으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맥주를 함께 마시고 싶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반면 정작 구출작전을 주도한 스웬슨 대위는 아래 등급인 ‘수훈십자훈장(DSC)을 받는 데 그쳤다.

 스웬슨은 2011년 조기 전역한 뒤 시애틀에서 혼자 살고 있다. 전역 후 직업을 구하지 못해 실업 상태다. 자서전을 내는 등 명성을 얻은 마이어 병장과 대비되는 길을 간 것이다.

  스웬슨 대위의 공적은 아프간전 종군기자로 활약한 매클래치신문의 조너선 랜디 기자의 추적으로 밝혀졌다. 매클래치는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신문그룹이다.

평소 스웬슨을 “내가 만나본 최고의 군인”이라고 했던 랜디 기자는 군 내부 자료와 장병 인터뷰 등을 토대로 마이어 병장의 활약이 과장된 반면 스웬슨 대위의 공은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마이어 병장이 13명의 미군을 구출했다고 했지만 당시 전투에 참전한 미군은 11명에 불과해 공적서가 부풀려졌다고도 했다. 해병대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던컨 헌터(공화·캘리포니아) 연방 하원의원까지 랜디 기자 편에 가세하자 국방부는 재검토에 착수했고, 마침내 스웬슨 대위의 공적을 인정했다. 다만 마이어 병장도 구출작전에 공을 세운 건 사실이므로 그의 명예훈장 수여는 그대로 유지됐다.

뒤늦게 명예훈장을 받게 된 스웬슨 대위는 목숨을 걸고 부상병들을 구출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그들은 내 병사다. 내 병사를 지켜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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