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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228>국가기록물의 모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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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윤석 기자

‘역사’는 ‘기록’에서 시작되고, 기록이 있어 역사가 존재합니다. 국가 기록물의 보존·관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은 “기록은 민주주의 마지막 보루”라고 정의합니다. “기록을 안 남기면 영수증 없이 돈을 쓰는 것이고, 기록 관리가 부실한 국가는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얘기죠. 우리의 국가기록물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요.

이윤석 기자·이지희 인턴기자(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 대통령기록물·공공기록물로 대분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관계자들이 지난 8월 경기도 성남시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국가기록물은 크게 대통령기록물과 공공기록물로 나뉜다.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대통령 재임 시 남긴 각종 기록물을 일컫는다. 공개연설문, 정상회담록, 대통령 주재 회의록, 사진, 인터넷 게시물 등 다양하다. 대통령이 외국 순방길에 받아온 선물도 대통령기록물로 영구 보존된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가안전보장회의 등 대통령 자문기관에서 생산한 자료도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된다. 안병우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대통령과 대통령 보좌·경호·자문 기관이 직무와 관련해 생산한 모든 기록물, 즉 대통령의 직무 수행 과정에서 생산된 모든 기록물을 대통령기록물이라 통칭한다”고 말했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기록물의 보호·보존 및 활용 등을 효율적으로 하고자 2007년 참여정부 시절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공공 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현행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록물로 분류·관리돼 왔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은 “공공기관, 행정부, 입법, 사법부를 다 포함해 대한민국의 국가 영역에 해당하는 업무행위의 과정과 결과로 만들어진 모든 기록물이 공공기록물에 해당된다”며 “포괄적인 공공기록물 안에 대통령기록물이 존재하는데 대통령기록물의 특수성 때문에 관리 방식상의 차별성을 두었다고 해석하면 된다”고 했다.

 공공기록물은 보존 기간에 따라 1·3·5·10·30년·준영구·영구로 분류된다. 10년 이하는 생산 기관에서, 30년 이상 기록물은 국가기록원에서 보존한다. 예외적으로 통일·외교·안보·수사·정보 분야의 기록물은 국정원, 국방부, 검찰, 경찰 등에서 자체 보관하기도 한다. 생산한 지 30년이 지난 비밀기록물은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박이준 국가기록원 학예연구사는 “보존기간이 30년 이상인 공공기록물에 대해 10년이 경과한 경우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해 보존한다”며 “매년 전체 생산 공공기록물의 10% 정도인 20여만 권이 이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전력 등 정부산하 공공기관의 기록물은 모두 자체 보존이 원칙이나 국가적 보존가치가 높은 기록물은 별도로 국가기록원이 수집, 관리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 대통령기록물, 일반·비밀·지정기록물로 분류

 국가기록물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대통령기록물은 일반·비밀·지정기록물로 구분된다. 일반기록물은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 비밀기록물은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 비밀취급인가권자만 볼 수 있는 자료다. 이보다 높은 단계인 지정기록물은 기록물을 생산한 대통령만 볼 수 있도록 완전히 봉인한 자료다. 쉽게 말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생산한 지정기록물은 박근혜 대통령조차 볼 수 없는 셈이다. 국가 안전 보장 관련 자료, 정무직 공무원의 인사 기록 등이 대표적이다. 대통령기록물법은 공개할 경우 국익에 중대한 위해, 사생활 침해, 정치적 혼란 등이 발생할 수 있는 자료들이 지정기록물에 해당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익한 원장은 “대통령기록물의 경우 국정 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해 별도로 지정기록물 제도를 만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보호 기간은 15년에서 최장 30년까지 정할 수 있다. 아직 보호기간이 남은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열람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의결이 필요하다. 고등법원장의 영장이 있을 경우에도 열람이 가능하다. 보호기간이 종료되면 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재분류하는 게 원칙이나 사안에 따라 비공개를 유지할 수도 있다. 또 대통령기록물법에는 보존기간이 지난 기록물의 폐기에 관한 규정도 있으나, 지금까지는 폐기 사례 없이 모두 영구 보존되고 있다.

# 국가기록원

 국가기록원은 안전행정부 소속 기관으로 정부에서 생산된 문서 등의 기록물을 수집·관리·보존 및 열람하기 위해 설치됐다. 1962년 내각사무처 총무과 산하 촬영실로 개설됐으며 1969년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 설립과 함께 기록물 집중 관리도 시작됐다. 국가 전반의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틀은 1999년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졌다. 2004년 4월 정부기록보존소 이름이 ‘국가기록원’으로 바뀌었다. 정부 대전청사에 본부를 두고 있고, 석·박사급 연구원 160여 명을 포함, 직원 330여 명이 근무 중이다. 올해 예산은 485억원이다.

 산하에 대통령기록관, 나라기록관(성남), 역사기록관(부산), 서울기록정보센터 등이 있다. 국가기록원에는 조선왕조실록 등 조선시대 기록물부터 시작해 문서 330만 권, 도면 22만 건, 카드 20만 건, 시청각 자료 240만 건 등이 보존돼 있다. 발견 당시 훼손 상태가 심했던 1949년 국무회의록과 1920년 지적원도 등은 복원 작업을 마치고 영구 보존에 들어갔다. 해외에서 입수한 자료도 다수 보존 중이다. 박이준 연구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생산한 판결문, 대한뉴스 시청각 자료, 베트남 참전 관련 기록물 등 이색 자료 다수를 보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대통령기록관에는 역대 대통령 및 권한대행이 생산한 약 2000만 건의 자료가 있다. 내진, 방폭, 탈산·소독, 항온·항습 공기조화장치 등 첨단 설비를 갖추고 있다. 특히 2층 서고는 담당 과장 2명만 지문인식시스템을 거쳐 출입이 가능하다. 국가기록원장조차 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국가기록물 보존 체계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면서도 “국가기록원의 잦은 수장 교체는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기록원장은 기록원 설립 이후 1년에 한 번꼴로 교체되고 있다. 안병우 교수는 “기록물 관리는 기록물의 속성과 내용, 맥락을 꿰고 있어야 하는데, 그건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익한 원장도 “기관의 전문성을 강화해 정치적 중립성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미국의 국가기록청(NARA) 청장은 문헌, 기록 학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사람이 앉아 오랜 기간 맡는다”고 전했다. NARA는 행정부 소속 독립기관으로 차관보급 청장 아래 직원 3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 사초(史草) 실종 논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7년 10월 3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조명균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은 디지털 녹음기로 두 정상의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대화록 작성을 위해서였다. 청와대는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이를 국정원에 보냈다. 국정원은 일주일 만에 대화록 2부를 만들어 1부를 청와대에 전달하고, 1부는 국정원에 남겼다. 조 비서관은 회담 당시 메모 등을 취합해 최종본을 만들었다. 2007년 12월,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개발한 이지원(청와대 업무·문서관리 시스템)을 통해 대화록의 최종 검토를 끝냈다. 그리고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 퇴임과 함께 이 대화록은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퇴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이지원시스템 사본을 만들어 사저로 가져갔다가, 이명박 정부의 강력 반발로 같은 해 7월 이를 국가기록원에 반납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사초 실종 논란으로 확산된 계기는 지난 대선 때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여야는 대선이 끝난 이후에도 이 문제를 놓고 극심한 대립을 보였다. 급기야 지난 6월 24일, 국정원은 2급 비밀로 보관 중이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뒤 전격 공개했다. 노 전 대통령 측과 민주당은 격하게 반응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아예 국가기록원에 보존 중인 대화록 원본을 열람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지난 7월 2일, 대화록 등 남북정상회담 관련 자료 제출 요구안이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가기록원에 있는 대화록 원본을 열람하면 모든 논란이 사라질 것 같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없었던 것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5명씩 지정한 10명의 열람위원은 두 차례 국가기록원 자료를 검색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의 기록물 고의 폐기 의혹을 제기하며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지난 8월 16일부터 국가기록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리고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정식으로 이관된 기록물 중에는 대화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물 관리시스템 ‘팜스(PAMS)’가 아닌, 노 전 대통령이 사저로 가져갔다가 국가기록원에 반납한 이른바 ‘봉하이지원’에서 대화록 최종본과 삭제된 대화록 초본을 발견했다는 것이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였다.

# 우리나라 국가기록물의 역사

 ‘선사’와 ‘역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문자를 통한 기록의 유무다. 그만큼 역사를 논하는 데 있어 기록은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토대다. ‘인류 시원의 창’이라고도 불리는 반구대 암각화는 한민족 문명의 개화기 역사를 보여주는 한반도 최초의 기록물이다. 비록 문자가 아닌 단순 그림이지만 당대 생활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심볼리즘적 기록물’이란 평가를 받는다.

 본격적인 기록물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신라·백제에서도 사서가 편찬됐다는 기록이 나오나 실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고려시대에도 왕의 행적과 당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고려왕조실록’이 존재했다. 하지만 태조 왕건부터 공양왕까지 약 474년에 이르는 역사가 담긴 이 기록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돼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물은 조선시대에 탄생한 ‘조선왕조실록’으로 조선 태조에서부터 철종까지 약 472년의 긴 역사를 담은 방대한 사서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73년 국보 151호로 지정됐다.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됐다. 흥미로운 건 절대왕권 시대의 권력자였던 조선의 왕들도 이 실록만큼은 함부로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세종도 예외는 아니었다. ‘태조실록’을 열람한 세종은 1431년 ‘태종실록’까지 보려고 했다. 당시 좌의정 맹사성은 “왕이 기록물을 본다면 사관들이 두려워 직필하지 못할 것”이라며 세종을 설득했다. 몇 년 뒤인 1438년 세종은 또다시 ‘태종실록’을 보겠다고 선포했다. 그러자 황희와 신개가 나서 세종의 실록 열람을 반대했다. 왕이 실록을 열람하게 되면 역사가 왜곡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세종은 결국 ‘태종실록’의 열람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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