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공화국' 하루 12명이 당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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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업체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인 이모(31)씨. 그에겐 생후 50일 된 딸이 있다.

 지난달 24일 오후 6시. 서울역은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들로 복잡했다. 이씨는 지상 역사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자신의 손가방 지퍼 사이에 스마트폰을 끼웠다. 카메라 렌즈를 하늘로 향한 채였다. 그의 앞으로 보라색 미니스커트 차림의 20대 여성이 지나갔다. 이씨는 이 여성을 따라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숨긴 가방을 여성의 치마 쪽으로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스마트폰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동영상이 촬영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같은 시각 서울역에선 서울지하철경찰대 소속 경찰관 3명이 잠복근무 중이었다. 이들은 이씨의 수상한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박세홍·정유석 경사가 그를 가로막았다.

 “스마트폰으로 뭘 찍은 겁니까.”

 정 경사는 재빨리 이씨의 스마트폰을 가로챘다. 이씨는 고함을 질렀다.

 “아주 생사람을 잡으시네요. 찍긴 뭘 찍었다고 그러세요.”

 정 경사가 스마트폰 앨범을 내밀었다. 보라색 스커트를 입은 여성의 치마 속이 찍힌 동영상이 재생됐다.

 “이래도 부인하실 겁니까.”

 “실수로 스마트폰이 켜졌을 뿐이라고요.”

 정 경사가 스마트폰 앨범에서 또 다른 사진을 찾아냈다. 생후 50일 된 이씨의 딸 사진이었다. 몰카 동영상 뒤로 웃고 있는 딸 사진이 나왔다.

 “이 사진 좀 보세요. 어린 딸한테 부끄럽지도 않아요?”

 물끄러미 딸 사진을 쳐다보던 이씨는 그제야 고개를 숙였다. 장지은 경장이 피해 여성을 데려왔다. 이씨는 이 여성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딸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아요.”

 본지 취재팀이 지난달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간 몰카를 전문적으로 단속하는 지하철경찰대를 동행 취재했다. 취재 결과 다른 사람의 신체를 몰래 찍는 몰카(몰래카메라) 범죄는 매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경찰청이 민주당 유대운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전국적으로 2132건(피해 여성 수 기준). 하루 평균 12명의 여성이 몰카 범죄에 당하고 있다. 몰카 범죄는 2008년 953건에서 지난해 3314건으로 3.5배 늘어났다.

 2008년부터 올 6월까지 가장 많은 몰카 범죄가 일어난 곳은 서울 중구(895건)였다. 이어 ▶서울 강남(433건) ▶서초(308건) ▶종로(253건)▶영등포구(213건) 순이었다. 특히 이씨가 몰카 범죄를 저지른 서울역은 ‘몰카 1번지’로 불린다. 2011년과 2012년 여름철(7~8월)에만 85건이 적발됐을 정도로 몰카 범죄가 자주 발생한다.

 몰카를 찍다가 적발될 경우 성폭력범죄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경기대 이수정(범죄심리학) 교수는 “촬영이 간편한 스마트폰 보급이 늘면서 몰카 범죄가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치는 등 처벌이 가벼운 것이 문제”라며 “몰카 범죄자 중에는 평범한 직장인이 많은데 사회적 역할에 얽매인 사람들의 일탈 욕구가 몰카라는 기형적인 성범죄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손국희·장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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