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우커 흡연 행렬 … 경복궁·명동 '콜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달 30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쇼핑을 마친 중국인 관광객들이 노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유정 기자]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모(19)씨의 하루 일과는 ‘담배와의 전쟁’으로 요약된다.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9시 퇴근할 때까지 백화점 주변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게 그의 일이다. 김씨는 “내가 담배를 못 피우게 제지하는 중국인 흡연객이 하루에 200~300명 정도 된다”며 “화단 깊숙이 박아놓은 담배꽁초들을 빼내는 것도 고역”이라고 말했다.

중국 최대 명절인 국경절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오후에도 롯데백화점 화단 앞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무리를 지어 흡연하는 중국인 관광객 때문이었다. 그들은 각자 면세점 쇼핑백을 들고 일행을 기다리며 담배를 피웠다. 바로 옆에 ‘No Smoking’ ‘禁止吸煙(금지흡연)’ 팻말이 세워져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부는 걸어가며 담배를 피우다가 불씨가 붙은 꽁초를 화단으로 휙 던졌다.

 지난 6일 동대문 두산타워 앞 광장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인 단체 관광버스 10여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중국인 관광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꺼내 물었다. 광장 한쪽에는 흡연구역이 따로 있었지만 거기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과 동행한 여행사 가이드 서모(27)씨는 “청계천처럼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관광객들에게 흡연을 자제하라고 말하지만 동대문은 금연구역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의 주요 관광지가 일부 중국인 관광객의 길거리 흡연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명동·동대문·종로·이태원·잠실 등 관광특구 5곳은 물론 경복궁 같은 문화유적지도 중국인들의 무분별한 흡연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중국인들은 흡연에 비교적 관대하다. 그에 비해 규제책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현행 건강증진법과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길거리 흡연은 버스정류장이나 공원, 놀이터 등 특정 지역만 제한되고 원칙적으로는 허용된다.

 이 때문에 최강선 서울시의원(민주당)은 지난 4월 서울 관광특구 전역에서 길거리 흡연을 금지하는 내용의 ‘서울시 간접흡연 피해 방지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울시가 2011년부터 청계광장·광화문광장·서울광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최 의원은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은 쇼핑 등 도시 관광을 하러 온다”며 “거리가 깨끗하고 쾌적해야 이들을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연구역 지정을 찬성하는 외국인도 적지 않다. 명동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 다카오 사토(72)는 “길거리 흡연 때문에 숨이 막히고 불편하다”며 “도쿄는 금연정책이 잘 지켜져서 거리가 깔끔한데 서울은 그런 면에서 질서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광객 감소를 우려하는 상인들의 반발로 개정안 통과는 7개월째 지지부진하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 이동희(55) 사무국장은 “명동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흡연을 많이 한다”며 “이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는 금연 정책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동대문 관광특구협의회 지대식(53) 사무국장도 “최근엔 엔저 때문에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며 “흡연에 관대한 중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려면 지나친 규제는 금물”이라고 말했다. 이태원관광특구 측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서울시의회는 개정안에 관광특구 내 폭 10m 이내 거리에선 흡연을 허용한다는 단서를 붙이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최 의원은 “명동이나 인사동은 좁은 골목이 많아 실효성이 떨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유정·장혁진 기자

◆서울시 간접흡연 피해 방지 조례=서울시가 공공장소에서의 간접흡연 피해를 막기 위해 2010년 제정한 조례. 서울시장이 공원·어린이놀이터·학교정화구역·버스정류소·주유소와 그 외 시민의 건강을 위해 지정한 특화거리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금연구역에서 흡연할 경우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