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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꽃병, 탄소섬유 의자 … 런던에 입성한 K디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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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스크린에 태극기가, 이어 흑백의 전쟁 고아 사진이 커다랗게 투사됐다.

 “한국 디자인이란 무엇일까요?” 김빈(31) 빈컴퍼니 대표가 청중에게 물었다. 전주한지사업협동조합과 손잡고 천연염색 기법과 옻칠기술을 적용해 한지·장판지 장신구와 인테리어 제품을 만들고 있는 그는 “해외 전시를 다니면서 단순히 예쁜 것보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스토리가 있는 것이 신뢰받는다는 점을 배웠다. 전통문화를 현대 디자인과 접목해 발전시키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영국 런던 얼스코트 전시장, ‘100% 디자인 런던’의 일반 개막일인 이날 오후 ‘K-디자인’을 주제로 한 좌담이 열렸다. 2012 런던 올림픽 시상대를 디자인한 엄홍렬(32) 롤리(ROLI) 책임 디자이너, 접히는 플러그 개발로 런던 디자인 뮤지엄 선정 ‘올해의 디자인상’(2010)을 수상한 최민규(32) 메이드인마인드 대표 등 해외에서 활약 중인 한국 젊은 디자이너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디자인 뮤지엄과 함께 이 행사를 기획한 킹스턴대의 캐서린 맥더모트 교수는 “‘100% 디자인’에서 한국 디자인 관련 좌담을 마련한 것은 처음인데, 왜 진작 안 했을까 싶을 정도다. 젊은 한국 디자이너들의 자신감과 참신함에 100명 가까운 청중이 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했다.

 ‘100% 디자인 런던’은 프랑스 ‘메종 앤 오브제’, 이탈리아의 ‘밀라노 가구 박람회’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전시로 꼽힌다. 여기서 K-디자인에 대한 주목도가 한층 높아졌다. 기업이나 개인 디자이너뿐 아니라 국가·도시별로도 참가하는데, 한국디자인진흥원은 2008년부터 이곳에 한국관을 만들어 참여하고 있다. 프랑스·이탈리아·중국·포르투갈 등 12개의 국가 혹은 도시와 함께다.

한국관은 물방울 모양으로 깎아 무게를 줄인 세라믹 컵·장신구·조명(스튜디오 미)을 비롯, 15개사가 참여해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특히 해외 디자인 전문지들이 모든 출품작 가운데 선정한 분야별 최우수 제품에 두 점이 꼽혔다. 가구 부문에 노일훈(35) 디자이너의 ‘라미(Rami) 벤치’가, 액세서리 부문에 전진현(32) 디자이너의 ‘공감각 식기’가 선정됐다.

 영국 왕립건축사이기도 한 노씨는 전투기·F1 경주차 등에 쓰이던 탄소섬유를 과감히 가구에 도입했다. 강철보다 10배 강하고 무게는 4분의 1 정도라는 소재의 장점을 살렸다. ‘나뭇가지들’이라는 뜻의 라틴어 이름(Rami)대로 가구는 나뭇잎의 잎맥처럼 얇은 실이 엉킨 듯한 다리를 하고 있다. 나뭇잎이라는 자연 형태와 탄소섬유라는 첨단 소재가 어우러진 제품이다.

 전진현씨는 인간의 공감각 연구에서 출발, 돌기로 혀와 잇몸의 촉각을 자극하거나, 속을 비운 세라믹 소재의 그릇과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로 청각을 자극하는 등의 공감각 식기를 내놓았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그는 이곳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쉐프들과 함께 공감각적 식사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디자인진흥원 이태용 원장은 “첫 참가 때는 ‘한국이 무슨 디자인?’ 하는 눈치였는데, 이제는 주목의 대상이 됐다. 올해 한국관서는 650건이 넘는 비즈니스 상담이 이뤄졌다. 디자인은 중소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런던=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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