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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의 미학|조경철 <연세대 교수·천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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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8세기말의 유럽은 향수 광 시대였다. 프랑스와 영국의 궁정에서는 향수 값으로 연간 막대한 세비를 지출했다. 우리 나라는 그런 종류의 향수 광 시대가 있었다는 역사는 없었다하나 요새는 한국 여성 중에서도 몸 치장품 목록에 향수를 넣어 「샤넬 넘버 5」라는 향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드문 듯하다.
하여튼 유럽에서는 그 당시 향기 있는 장갑, 구슬, 베개, 옷, 손수건 등 닥치는대로 향수를 뿌렸으며 나중에는 요리점, 극장, 교회에까지 괴향을 풍기게 했던 것이다. 특히 여성들은 남성을 유혹하는 수단으로 온갖 향수를 다 썼고 일부 층에서는 향수 망국론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1770년 조지 3세 때 영국 의회는 다음과 같은 향수 단속령까지 발포하기에 이르렀다.
즉 『나이·계급·직업의 여하를 막론하고 미혼자·기혼자 또는 미망인 할 것 없이 향지분·가발·서반아미안료 등으로 남성을 속여 결혼한 여성은 요술과 마술 단속법에 의거하여 형 벌를 줄 것이며 그 결혼은 무효로 한다』고 했다.
이것은 고대 로마 시대의 향료 금압령과 비슷한 것이었다. 이런 거센 법령들이 과연 사람들의 입을 막고 코를 막을 수 있었던가는 오늘에 있어서 향수가 생활 면을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컨대 여기에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왜 여성들은 향수에 그처럼 문제가 되도록 매혹되는가는 생각해 볼 만하다. 물론 책임의 절반은 남성이 져야 한다. 본래 여성들은 남성들을 자기 상대로 보는 한편 자기에게 흥미를 끌게 하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의 주의를 끄는 법이란 오관의 감각에 호소할 수 밖엔 없다. 시각·후각·촉각·미각·청각 등의 5대 감각을 모두 이용하는데 향수가 가장 유력한 수단의 하나다.
이런 사정까지는 이해하지 않을 수 없지만 여성들은 그 향기 종류 선택에 좀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한다. 청춘 시대의 향기는 청순한 이미지를 잃지 않도록 가볍게 풍기는 식물성 향기를 쓸 것이며 결혼한 부인이라면 좀 짙은 편이 좋을 때도 있을 것이다. 향수는 몸에만 지니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 있는 비교적 주의가 안가는 창문의 커튼이라든가 목욕탕의 타월, 베개 등에 자연스러운 향기를 심어두자.
그리고 향기란 이와 같은 물질적인 향료에 의해서만 나는 것은 아니다. 바르고 열성적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숭고한 인격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단정하고 활달하고 개성 있는 교양을 갖춘 여성에게서 아름다운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고 남성이나 여성 홀로 이룰 수도 없는 것이다.
서로 그러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바르고 예민한 후각을 갖춘 남녀가 늘어나야겠고 또 자연의 향기를 이용하는데 부심 하듯 살아가는 태도와 사람됨에서 향기를 풍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되새겨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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