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제5화> 동양극장 시절(14)|박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날림 연극>
그 당시 지방 공연의 일정은 함흥, 신의주, 평양, 대구, 부산, 광주 등지가 3일 내지 4일, 그밖에는 고작 이틀 아니면 하루이니 참으로 바쁘고 고단한 여행이요 중노동이었다. 그나마 흥행이라는 표 파는 영업이 잘 되어야 고깃점이나 대폿잔을 얻어먹지 야찬비 (밤참 값을 주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못 주는 날도 많다) 만으로는 여관 밥의 부족을 보충하기 어렵다. 그러니 값싼 여관을 골라 그나마 단체라고 할인을 해달라니 가뜩이나 값싼 여관에서 더 값싸게 해줄 것은 뻔한 이치이다.
그래서 침구 기타는 2∼3인에 한벌 폭으로 배당이 오지만 그까짓 것쯤이 문제가 아니라 밥을 많이 주고 반찬을 먹도록 해 달라는 것이 극단 측의 요망사항이다. 그러나 밸런스가 안 맞는 이야기니까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가 없다.
그러니 소위 흥행이 잘 되어 단장의 아량과 후의로 단원들을 잘 먹이면 사기도 진작되고 자기네 집에 있는 것 보다 지방 공연 한차례를 치르고 나면 살이 푸둥푸둥 찌는 수도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배에 차지도 않는 여관 밥으로 곯은 배를 야찬비로 나마 채워볼까 하는데 흥행이 안되어 그나마 못 받게 되면 사기 저하는 다시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영양 실조에 걸려 무대에서 소리 지를 기운도 없게 된다.
단원들의 이러한 실정은 모르고 도맷금으로 욕만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그래서 당시에 여배우를 여관비 못 갚은 인질로 잡혔다는 이야기는 그냥 나무랄 수만은 없는 쓰라린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관 식대 때문에 주인 혹은 안주인 아니면 그 아들이 다음 장소에 가서 갚아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돈받겠다는 일념으로 따라나섰다가 다음이 그 다음 또 그 다음, 이렇게 해서 돈을 받기는커녕 그 극단에 휘말려 들어간 바가 많았다.
이러한 지방 공연에 얽힌 애환은 한 붓으로 쓸 수 없거니와 이들의 최대의 즐거움은 그저 지방 유지의 초청이다. 이것이 없으면 그들은 비애를 느낀다. 그러나 대개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극단의 차원과 그 유지의 차원은 더 비례한다. 그뿐 아니라 지방 도시의 대소에 따라 초청 받는 극단의 대소도 정비례한다. 또 그 지방의 유지로 행세하려면 제 지방에 온 극단을 초청하는 것은 물론 그 지방의 다른 유지들을 배빈으로 초청하는 것이 자신의 지위를 높이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피차 면식이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극단 측으로서는 어떤 지방에 가서 아무개의 초청이건 한번이라도 있어야 체면이 서고, 또 영양보충도 하게 되는 것이다. 재수가 좋을 때는 이 같은 유지들의 초청이 밀려들어 하루 이틀로는 응할 수 없는 그런 경우도 있고 반대로 누구하나 여관 방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수도 있다.
그러나 수준이 낮은 지방에서는 여배우만 청해 가는 수가 있다. 내가 청춘좌의 제1회 지방 공연 때 따라 나섰는데 수원에 가니까 연극이 끝나자 경찰 서장이 어떤 요정에 앉아서 순사를 시켜 여배우 몇만 보내라고 단장에게 명령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 혼자 요정에 찾아가서 술상을 뒤집고 그 이튿날 서울로 돌아와 경무과에 가서 호롱을 쳐 그 서장을 좌천시킨 일이 있다.
이러한 때라 동양극장의 전속이라면 지방에서 행세를 했지만 경찰의 미움은 받을 수밖에 없었다. 놈들은 무슨 트집이든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고 용케 뚫고 헤엄쳐 다녔다.
그때 장기로 지방으로만 다니던 호화선에 대표 급 배우가 서일성이요, 박창환이었다. 녀석들이 앞서 얘기한 영양 실조에 걸린 판인데 어느 지방에 가니까 초청 예약이 왔다. 물론 일면식도 없는 그 지방 유지였다. 초청이라면 으례 연극이 끝난 다음 밤중 새벽까지 향응을 받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2일간의 공연이었는데 끝날 밤이었다. 그러니 다음날 새벽에는 첫차로 다음 장소에 가야하는 것이다. 주린 서군과 박군이 상의 끝에 빨리 끝내고 술 얻어먹자는 데 합의가 되어 연극을 건성으로 날리고 화장한 얼굴을 재촉하여 지우고 있는데 일당의 관객이 분장실로 몰려와서 『이 강도 같은 놈들아. 협잡 연극을 하느냐. 다시 처음부터 해라』하고 데모가 일어났다.
알고 보니 첫날 와본 팬이 그 다음날 다시 와서 보니까 어제 연극에 비해 반밖에 안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막이 내린 다음 흥분한 나머지 『어쩐지 싱겁다』며 의아한 마음으로 복도에서 서성거리는 관객들을 선동해서 몰려온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하고 나니 새벽녘이 되어 청은커녕 냉수만 마시고는 봇짐을 들고 정거장으로 나갔다.
이것을 내가 지금 한낱 우스개 얘기로 쓰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이러한 태도와 불성실한 연극인이 있지나 않나 해서이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