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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맹학교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100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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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새들에게도 다리가 있어요?”

 1999년 3월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의 교실이었다. 조류보호단체가 국내 첫 점자 도감을 제작해 이 학교에 전달한 날이었다. 중1 여학생이 옆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 지금도 생생하다. 학생은 조류도감을 손끝으로 ‘읽고’ 있었다. 태어나면서 시력을 잃어 새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새들은 날아다니니까 다리가 없을 줄 알았어요.” 이어진 말 역시 잊혀지지 않았다. 그럴듯한 상상력이라고 여겨져서다. 사회의 편견이 이들을 ‘날지 못하는 새’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도 하게 됐다.

 서울맹학교는 이 땅의 첫 시각장애인 학교다. 1913년 4월 서울 서대문형무소 인근에 국립 특수교육기관으로 지어졌다. ‘제생원 맹아부(濟生院 盲啞部)’라는 이름이었다. 1931년 현재 자리로 옮겨와 59년엔 서울맹학교와 서울농학교로 분리됐다. 이런 서울맹학교가 이달 초 100주년 기념 행사를 열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100주년 음성 광고가 흘러나왔다. “서울맹학교 성우반 학생들의 목소리”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재작년부터 성우반을 운영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아웃도어 광고도 한 편 찍었습니다.” 이 학교 이유훈 교장의 자랑이었다. 성우반을 키운 데는 성우 권희덕(57)씨의 공이 컸다. 고(故) 최진실씨의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 CF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권씨가 2년 전 다른 성우들과 이 학교에서 낭독극을 공연하면서 학생 한두 명을 포함시켰다. 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한 권씨가 학생들 지도에 나선 것이다. 성우반은 동아리에서 올해 방과후 과정으로 ‘승격’됐다. 김 교장은 “졸업 후 실제 성우도 나오지 않겠느냐”고 기대하고 있었다.

 다시 들여다본 서울맹학교엔 변화가 컸다.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을 위한 인문반 신설(2004)이 대표적이다. 졸업 후 대부분 안마사가 되던 과거와 달리 학생들 희망이 다양해진 것이다. 이를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긴 하다. 이 학교 강초경(57·여) 총동문회장은 “후배들이 다양한 꿈을 갖는 것은 좋지만 혹여 우리가 경쟁력을 갖는 안마에 대한 교육이 위축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인문반이 없을 땐 모두 안마를 배웠다. 기념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6인조 밴드 ‘절대음감’의 보컬 이민석(25)씨도 그랬다. 나머지 5명도 민석씨 후배들이다. 민석씨는 시력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전맹(全盲)’이다. 하지만 게임에 특별한 재능을 보여 재학 시절 프로게이머 임요한과 스타크래프트 대결을 벌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게임·음악 모두 주변에서 반대했죠. ‘장애인에겐 힘들 거야’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 없어지면 좋겠어요. ‘이 분야만큼은 장애인은 안 돼’라는 생각도요.”

 날개가 있지만 비행 능력이 퇴화한 새들도 있다. 장애학생들에게 더욱 많은 기회를 사회가 제공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맹학교의 110주년 기념 행사가 기대된다.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