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 멈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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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자정을 앞둔 9월 30일 밤(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존 베이너 하원의장(공화당)에게 전화를 걸었다. 10분도 못 돼 전화는 끊겼다. 베이너는 의사당 복도의 기자들에게 “협상 불가가 대통령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게 끝이었다.

 미국 연방정부가 10월 1일 문을 닫았다. 17년 만의 셧다운(shutdown·정부 폐쇄)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갈린 미 의회는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법)’ 실시를 둘러싼 극심한 의견 차 때문에 2014 회계연도(2013년 10월 1일~2014년 9월 30일) 예산안을 기한 내 처리하지 못했다. 미국은 새 회계연도가 10월 1일 시작된다.

 특히 미 의회는 정부 지출을 일시 허용하는 잠정예산조차 처리하지 않아 정부 폐쇄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맞았다. 이에 따라 당장 1일부터 80만 명에 달하는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강제 무급휴가 상태에 놓였다. 국방과 치안·항공업무 등 국가 안위와 관련됐거나, 우편업무 등 시민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을 제외하곤 정부 활동은 중단됐다. 백악관 예산관리국은 긴급 성명에서 “의회는 잠정 예산안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촉구했다.

 셧다운 기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 연방정부가 다시 가동되려면 백악관과 의회가 새해 예산안에 합의한 뒤 상·하원 전체회의에서 각각 처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해야 한다. 하지만 야당인 공화당은 연방 재정적자를 키울 수 있는 오바마케어 관련 지출을 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건보 개혁은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거부권 행사라는 배수진까지 치고 있다. 이 같은 논쟁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기 싸움의 성격도 띠고 있어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합의가 쉽지 않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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