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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인 유권자 표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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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경민
뉴욕 특파원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명소 플라자호텔.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아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만찬은 어느 때보다 성대했다. 안호영 주미대사와 성김 주한 미국대사는 물론 윤병세 외교부 장관까지 참석했다. 뉴욕·워싱턴의 내로라하는 인사 600여 명이 북적댔다. 한자리에 최하 500달러짜리 좌석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5만 달러 기부자도 적지 않았다. 거의 한국기업이나 한국과 거래하는 미국기업 혹은 재미동포다. 한 해 370만 달러에 달하는 코리아소사이어티 예산의 상당 부분이 이날 하루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기념하는 뉴욕 퀸스커뮤니티칼리지 내 홀로코스트센터.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동아시아 역사 인턴십’ 프로그램을 시작한 한인 풀뿌리 운동단체 ‘시민참여센터’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한 해 1만 달러밖에 안 되는 운영기금을 모으지 못해서다. 이 센터는 학기당 대학생 10명을 뽑아 동아시아의 아픈 현대사를 가르친다. 한국과 화상전화로 생존 위안부 할머니와 인터뷰하는 건 이 프로그램의 백미(白眉)다. 하지만 이번 학기 프로그램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한국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 주도로 1957년 설립됐다. 한국과 미국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1980년대까지 힘없고 돈 없었던 한국으로선 코리아소사이어티가 그나마 붙들 수 있는 한 가닥 지푸라기였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에서 근무했던 퇴역 미국 외교관의 입을 통해 한국 정부나 기업이 미국에 전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코리아소사이어티 행사에 미국 현역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하다.

 한데 홀로코스트센터와 시민참여센터가 주관하는 일본군 위안부 고발 행사엔 늘 뉴욕·뉴저지 정치인이 붐빈다. 홀로코스트센터는 뉴욕 유대인사회의 구심점이다. 여기다 시민참여센터는 한인 유권자의 ‘표심(票心)’을 잡고 있다. 2007년 5월 미 연방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도 퇴역 미국 외교관이 아니다. 한인 유권자 표의 힘이었다. 시민참여센터가 한인 표를 결집시키지 못했다면 한국의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도 훨씬 늦어졌을지 모른다.

 더욱이 요즘 홀로코스트센터엔 동아시아 인턴십 신청자가 줄을 섰다. 시민참여센터는 학생들의 생생한 위안부 할머니 인터뷰와 연구자료를 엮어 공립학교 교재도 만들 계획이다. 교사들의 관심은 벌써 뜨겁다. 지난 7월 11일 생존 위안부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을 듣는 행사엔 뉴욕 일대 공립학교 교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런 호기(好機)를 겨우 1만 달러가 없어 걷어차버린대서야!

 (동아시아 인턴십 후원 http://fundly.com/help-save-the-asian-social-justice-internship-program)

정경민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