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미 소사 '기회를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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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시즌을 장식할 사건을 상상한다면 과연 어떤 사건이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사건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30개 구단들 중에서 가장 불행한 구단이라고 한다면 1918년을 끝으로 월드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보스턴 레드삭스를 가장 먼저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드삭스도 컵스에 비한다면 결코 불운한 팀은 아니다.컵스가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은 레드삭스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보다 10년 전인 1908년이었고 그들이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아 본 것도 1945년으로 20세기 후반의 월드시리즈 역사에서 컵스의 자리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30개 구단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팀이 바로 컵스인 것이다.

컵스는 1876년 내셔널리그가 출범한 첫 해에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통산 16번이나 리그 우승을 차지한 전통의 명문구단이지만 이런 전통과는 다르게 컵스의 최근의 역사는 아주 형편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이 가장 멋진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한 그들에겐 새미 소사라는 간판타자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유는 이렇다.역대 500홈런 달성자들 중에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던 유일한 선수였던 어니 뱅크스가 바로 컵스 선수였고 만약 컵스가 내년 시즌에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불행히도 이 두 번째의 주인공이 소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사는 올시즌까지 통산 499개의 홈런을 기록했다.올시즌 소사는 단 하나의 홈런만 더 추가했더라도 그는 역사상 5년 연속 50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최초의 주인공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이 결코 소사를 실망시키지는 않는다.왜냐하면 이 때문에 소사는 2003시즌을 여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기 때문이다.당장 내년 시즌 개막전에서라도 소사가 하나의 홈런을 추가하게 될 경우 그는 역사상 500홈런을 달성한 최초의 비미국인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며 개막전에서 500홈런을 달성한 역사상 최초의 선수로도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컵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한다는 것, 이것은 2003시즌의 피날레도 소사의 무대가 될 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그래서 내년 시즌 컵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것은 분명 소사가 바라는 가장 큰 소망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1950년 이후 겨우 세 번(1984년,1989년,1998년) 밖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던 컵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기대할 수는 있는 것일까?

최근의 컵스의 부진한 성적과 함께 팀 전력 강화에 열정을 기울이지 않았던 구단 덕분에 소사는 '가을의 고전' 월드시리즈 무대에 단 한 번도 서지 못했다.

하지만 올시즌 스토브리그에서의 컵스의 행보는 예년과는 사뭇 다르다.컵스는 이미 올시즌에 커다란 전력 보강이 없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월드시리즈 무대에 올려놓았던 명장 더스티 베이커 감독을 모셔왔으며 2001시즌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의 한 명이었던 대미안 밀러 포수도 영입한 상태다.

또한 주전 1루수 자리를 놓고 노장 프레드 맥그리프를 방출시킨 자리를 대신할 선수로 올시즌 FA로 풀린 짐 토미의 영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컵스가 비록 토미를 영입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에겐 최희섭이라는 신인 거포가 있기 때문에 최희섭의 활약 여부에 따라 맥그리프의 공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내년 시즌 소사의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소망을 현실화시키기에는 충분한 것들이며 이제 남아 있는 것이라면 소사 자신이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사가 2003시즌 월드시리즈 무대에 선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500홈런을 달성한 해에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는다는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는다는 것이다.역사상 17명의 500홈런 달성자들 중에서 500홈런을 달성한 해에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던 선수는 1971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선수로서 월드시리즈 무대에 섰던 프랭크 로빈슨이 유일했다.

소사는 바로 이 엄청난 기록을 달성하는 역사상 두 번째 선수로 기록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가 이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면 내셔널리그 선수로서는 최초의 선수로도 기록되는 것이다.

컵스의 2003시즌 월드시리즈를 향한 도전은 1908년 이후 무려 95년 동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한 팀의 처절했던 인내에 대한 보답이 될 것이며 한편으로는 소사를 2003시즌의 처음과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주인공으로 기록되게 할 금세기 최고의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배길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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