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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구도찾는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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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의 열강복귀>아널드.토인비

<군국주의 부활없어|서구세 후퇴속 비중점증|열강개념 영토욕과 결부못시켜>
영국의 석학 아널드.토인비교수는 일본은 앞으로 대외관계에서 한정된 국가적 이익을 인류복지라는 보편이익으로 승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인비교수는 또 그의 자택에서 모처럼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중공은 근세 열강들로부터 당한 수해의 설욕을 생산력의 강화에서 찾고 있으므로 산업기술이 앞선 일본과의 상용관계를 추구할 것이라고 일-중공 관계를 전망했다.
아시아 장래와 연결지어 일본의 앞날에 관해 토인비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아시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흔히 일본의 열강화가 운위되는 것을 자주 듣는데 우리는 이 일본의 열강화라는것의 연차적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무릇 열강이란 무엇보다도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제 방대한 경제력을 구축한 일본은 이미 하나의 열강이라 불러서 안될 것은 없다.
일본의 열강화가 약간 새삼스럽게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한가지 이유는 동양으로부터의 서양세력의 후퇴라는 역사적인 마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가운데 한 동양국으로서의 일본의 비중이 보다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 있지 않은가 여겨진다. 하여간 열강이라는 뜻을 실력의 단순한 보유라는 측면보다는 그 행사,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국제관계에서 자국의 실력을 배경으로 타국에 대한 자의의 강요나 나아가서는 정복의 가능성 따위등에 역점을 두고 풀이한다면 일본의 열강화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 열강이란 개념에는 상당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한다. 이에 대한 논거는 영토적 정복의 시대는 지났다는 역사적 사실 하나만으로도 족할 것으로 생각한다.』

<군국주의 무위성을 경험>
-그러니까 일본의 열강화라는 말에는 역사적으로 경험해온 어떤 움흉한 뉘앙스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인가?
『적어도 앞으로 일본이 패전이전의 군국주의적 제국주의로 환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아도 지나친 낙관은 아닐 것이다. 그 첫째 이유는 장기적 안목에서 본 군국주의의 무위성이란 그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쓰라리게 맛본 역사적 경험이라는데 있다. 그리고 아주 보편적으로 얘기한다면 현대적 생산양식이 경제적인 번영을 굳이 영토확장과 결부시킬 필요를 없게했고 또 핵시대이후 파괴수단의 엄청난 발달로 정치수단으로서의 실력행사의 실효성 혹은 그 가능성마저 극도로 제약돼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군비확장 경향이라든가 일본을 무장해제시킨 소위 평화헌법의 개정을 시도하는 일부의 무시하기 어려운 움직임등은 어떻게 볼 것인지?
『이것도 나로서는 지나치게 경계의 눈으로 보지는 않는다. 재군비 그 자체에 지상의 목표를 두고있기 보다는 다분히 어떤 피해의식에서 오는 보상심리의 장용도 있다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본인 가운데는 맥아더헌법을 강요된 것으로 여기는 측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또 그러한 경험을 아주 이해못할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이 경제력에 따른 정치적 독립성이 강화됨에 따라 앞으로 더욱 높아진다해도 그리 놀랄 것은 없다. 그러나 일본이 재무장에서 국가이익을 찾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하긴 객관적으로 척도할 수 있는 국민이익의 극대화가 반드시 정치를 좌우하는 것이라고만 장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일본인 전체가 좌건 우건 극열여론의 완전한 포로가 될 가능성이란 그리 큰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 영국에서도 화제가 됐면 미시마(삼조) 할복사건등이 생각되는데 그러한 어딘가 맬러드러매틱한 사건이 앞날의 어떤 불길한 조류를 예시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싶진 않다. 물론 일본개방 1백년, 민주화 25년의 과정 가운데 외래문명의 소위 이질성에 대한 반발이 갖가지 극적인 표현을 빌던 경우가 몇번 있었고 일본의 현정치 체제가 간직하는 취약성에 대한 우려도 아주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서구적 현대화 부정못해>
그러나 일본에서 잠깐씩 볼수 있었던 그러한 과거에의 향수가 서구적 또는 현대화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복고적충동으로 번져나가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여기서 현대공업사회 또는 기계문명의 폭주로 야기되는 사회생활의 이른바 탈인간화에 대한 반발이 있다는것은 간과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은 일본이나 그밖의 나라에 국한시키거나 그저 어떤 한 정치체제적 차원에서 논의할 일이라기보다는 전공업사회 그리고 앞으로의 재계가 다같이 다뤄야할 문제이다.』
-일본의 장래 또는 아시아의 내일과 관련해서 일본과 중공의 관계가 주시되는데 그점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앞으로 이 두나라의 관계에서 우리는 상극화의 요소와 상용화의 요소를 들수 있다. 지난 반세기동안의 역사가 이들의 간격을 멀리 떼어놨다는 것은 되풀이할 것도 없다. 오늘에 있어서도 일본으로서는 핵으로 무장한 중공지도층의 과열이, 그리고 중공으로서는 미일안보체제등이 상호불신의 요인을 이루고 있다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영속적인가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이 있다. 어떤 경우의 혁명이건 초기의 과열이라는 보편현상이 장기 지속한다 는것은 역사적 경험상 전혀 없거나 극히 드물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그밖의 서방국가들이 대중공 태도에서 완화하는 기미도 이와 관련해 눈여겨봐 둘만한 일이다.
그보다도 우리는 일본과 중공이 그들간의 관계를 적어도 상용화의 방향으로 조정하기를 바랄법한 일들을 지적할 수 있겠다.

<독소처럼 중공과 접근>
중공의 대외감정이 근세열강들로부터 당했던 민족적 수모를 설욕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생산력의 강화에 그것을 찾고 있다고 본다면 이런 목적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오늘이나 내일의 중공지도층이 산업기술이 앞서있는 일본과 상용관계를 영영 멀리하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리고 일본 당로자들이 흔히 말하는 정경분리라는 외교적 수식이야 어떻건 장기적인 안목에서 중국대륙과의 접근을 모색해 왔다는것도 우리는 보아온 터이다. 이점은 최근 주목을 끈 독소수교에서 어떤 평행적 선례를 찾는다해도 아주 터무니없는 짓은 아니다. 내가 1929년 한국을 거쳐 일본을 방문했을때와 67년에 세번째로 방일했을때 일본인들의 대중공관에는 노열해 가고 있다고 할만한 변화를 볼 수 있었던 것도 흥미있었다.』
-아시아의 앞날과 일본-중공문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동양으로부터의 서양세력의 후퇴 경향이라는 큰 구도속에서 흔히 변화가 자아내는 불안감의 여운마저 없지않은 인상인데 이것이 기우에 불과한 것인지?
『불안과 긴장은 언제 어디서나 갖가지 형태로 존재해온 동반자이다.
그러나 동서양의 접촉이 있기까지 서양세계는 몇천년동안의 불안·긴장·전쟁을, 말하자면 양적으론 동양보다 더많이 겪어야 했다. 물론 최근세에 와서는 동서양의 구분보다는 열강민족국가들이 주역단위를 이루어왔다. 오늘날에 와서는 지금까지의 이같은 긴장이나 불안의 내용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전쟁은 갈수록 타당성잃어>
이것은 먼저 불안요인으로서의 국가간 경쟁이나 전쟁이라는 것이 갈수록 타당성을 잃어가리라는 것이다. 그 이유의 하나를 반복하면 평화파괴자로서의 영토확장 야욕은 그 실용성과 실행성을 다같이 줄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지난 대전후 이념적인 면에서의 동서대결이 긴장의 요인을 이루어왔고 현재도 그렇지만 이것도 꼭 영속불변한 것으로 여길 것은 아니다.
중세기 유럽사람들이 불가변·불가피한 것으로 여겼던 신·구교간의 사생결단이 오늘에 와선 좀 우스꽝스러워졌다는것도 아주 빗나간 역사적 예는 아닌 성싶다. 앞으로 우리의 관심을 끌 불안과 긴장의 내용은 이를테면 국가간보다 내전적인 성격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예를들어 세대간의 갈등이라든가 사회이해의 충돌, 인간생활을 규제하는 결정권이나 영향권의 불균형한 분배에서 오는 긴장 또는 인종이나 부의 격차라는 점에서 남북문제등 최근까지의 긴장의 성격이 다분히 수평적이었다면 앞으로는 수직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러한 불안의 파급양식이나 규모에서는 그것이 범세계적이라는것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니까 현대의 불안을 아시아로 국한시킨다든다 그속에서의 요인들을 어느 특정국가단위라는 차원에서 포착한다는 것도 장기적이나 거시적인 면에서는 그 의의가 별로 큰 것으로 보지않는다.』
-그러나 아시아나 인류의 평화라는 문제에서 그 효과가 긍정적인 것이건 부정적이건 앞으로 상당한 기간 각 특정국가들의 역할이나 자세가 문제될 수 있다고 보는데 이와 관련한 70년대나 그후의 일본을 어떻게 보는가?
『그것은 나보다도 앞으로의 일본사람들 자신이 좀더 나은 회답을 줄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한두가지 희망적인 얘기만은 해둘 수 있다. 일본은 여러가지 점에서 세계의 희비상을 축도적으로 경험해온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좀더 많은 생산, 좀더 많은 노동, 좀더 많은 부, 좀더 많은 소비라는 현세계의 집념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특기할만한 기록을 쌓아왔다. 그에 앞서는 민족주의의 변태적 광란이 가져오는 비극을 누구보다 쓰라리게 경험한 나라이기도 하다.

<의구의 눈으로 볼필요없어>
그리고 남의 가치를 단순한 물질적 소비량으로 재려는 우리들 다수의 경망에 대해 일본은 잠시동안 이런 풍조를 정관해 보도록 촉구하는 몇가지 극적인 경종을 울려준 나라이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정관의 기회를 어느정도 유효하게 활용하느냐 하는것은 일차적으로 그들 자신의 자질에 달려있다는건 말할 나위도 없다.
결국 자신의 국가적 이익을 어떻게 설정하고 그 실현과정에서 다루어야할 문제들을 어떻게 느끼고 대응해 가느냐에 좌우된다.
이점에 대해서 나는 지금까지 얘기한 것처럼 아시아속의 일본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의도안다든지 침울한 눈으로 보지않는다. 무엇보다도 현대적 불안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또는 전후의 국제관계를 특징지어온바 양극화·단순화된 정책적 대전제의 수정필요성을 의식하는데 있어서도, 지금까지 일본의 지배적 여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져 있지않다고 말할수있다.
요새 흔히 말하는 공해등 기계기술 문명이 전인류앞에 던진 문제라든가 광의의 남북문제가 앞날의 평화를 위해 요청되는 범세계적인 대응책에서 일본의 자세가 소위 열강이란 이름에 상응하는 긍정적일 것으로 믿고 또 그것이 나의 소망이기도 하다. 유엔의 이상이 국가단위의 상충하는 한정이익을 인류복지라는 보편이익으로 승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일본이 앞으로 대외관계에서의 규범을 이런 이상에서 찾아야할 것이며 지금까지의 그들이 시사한 것이나 실적들은 아직은 마음에 차지않다해도 그리 비극적인 것으로는 보지않는다.
또 그것이 비극적인 것이 안되도록 하자면 세계의 누구나를 막론하고 공동체적인 상호감시나 격려가 필요하다.』 [런던=박중희특파원]

<약력>
▲1889년 런던에서 출생 ▲옥스퍼드대학에서 고대 역사전공 ▲1919∼1924 런던대교수 ▲1943∼1946 외무성조사부장 ▲1919∼1946 파리평화회담에 영국대표 일원으로 참석 ▲1925∼1955 런던대학 국제역사 연구교수겸 왕립국제문제연구소연구부장 ▲1921∼1922 맨치스터·가디언지 특파원 ▲1937 아카데미회원 ▲주저:역사의 연구(10권·1934∼54) 세계와 서구(1953) 역사가가 본 종교(1956) 등 다수. 그밖에 인터내셔널·어페어즈 어틀랜틱지등 정기간행물에도 기고.

<미.소.일.중공과 한반도의 역학>로저·힐즈먼

<미철군은 국내용|소, 한반도 적화불원|불만계층없애는 것이 안보>
로저.힐즈먼 전극동담당 미국무차관보는 닉슨·독트린에 따라 주한미군의 일부가 철수하더라도 한국의 안전보장은 위협을 받지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 컬럼비아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있는 힐즈먼박사는 코네티커트주의 라임이라는 작은 부촌에 있는 자택서재에서 가진 기자와의 단독회견에서 이와같이 말하고 그러나 한국이 군국적으로는 자체의 방위력을 갖추고 정치적으로는 국민가운데 불만스런 계층이 없도록 정부가 노력하는 것이 안보의 필수요건이라고 말했다. 『나는 민주당 사람이다』라고 전제한 힐즈먼박사와 기자가 가진 회견내용은 다음과 같다.(경어는 생략)
-일반적인 질문부터 시작하겠다. 닉슨·독트린이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닉슨·독트린의 성급한 실천은 동남아일대에 힘의 공백을 남겨 소련이나 중공의 좋은 침투대상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힘의 공백이 생길 것이라는 전제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닉슨.독트린의 실체는 대단히 모호하다. 모호한 개념을 구사하는 것이 닉슨의 특기다.

<월남화는 지상군철수뿐>
닉슨은 괌선언을 하고 미군을 철수시키는 조치를 취하여 이른바 월남전의 월남화를 추진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전면적인 월남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상군을 철수하여 지상의 전투를 월남사람들에게 맡긴다는 것 뿐이다. 병참지원·공중지원은 지상군철수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요컨대 닉슨·독트린이라는 애매한 정책선언은 미국 국내용으로 중점이 두어진 것이지 미국의 아시아 포기를 의미하는게 아닌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일부 또는 전면적인 철수를 대단히 걱정하고 있다. 미국의 결정은 한국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에 입각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한반도에는 여전히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고 북괴는 공산화에 의한 통일전략을 바꾸지 않고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미군철수뒤에 한국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는가?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프랑스가 영국에 영군의 프랑스 파병을 요청했다. 영국이 얼마만큼의 군대를 원하는 가고 프랑스에 물으니 프랑스는 한사람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핵무기시대다. 지리적인 거리가 문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규모가 문제되지 않는다. 미국이 핵무기를 갖추고 있는한 명목적인 주둔으로써 전쟁억지 수단으로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소련이나 중공에 의한 한국공격이 있을경우 미군이 즉각 지원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북괴에 의한 단독 남침의 경우인데 북괴가 소련의 응락없이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다.』
-소련이 여전히 평양서 상전노릇을 한단 말인가? 소련은 북괴의 군사적인 모험을 저지하기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단 말인가?
『평양엔 이제 상전이 없다. 그러나 전쟁을 하자면 탱크·비행기·석유등이 필요한데 소련의 지급없이 이런 물건의 조달이 불가능하다. 북괴가 보유한 전쟁물자는 2, 3주 이상을 못갈 것이다. 한국동란때는 북괴가 스탈린의 허락을 받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도대체 소련은 적화통일된 한국을 원하지 않는다. 적화통일된 한국은 궁극적으로는 중공쪽으로 기울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동북아 방위구성같은 새로운 집단방위체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요가 없다. 설사 동남아조약기구(SEATO)가 종이 호랑이라고 해도 미국을 상대로한 각국의 현존하는 쌍무방위조약으로 충분하다. 새로운 집단방위체제는 오히려 아시아의 공산권을 자극, 단결시킬 위험까지 있다.』
-긴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때 통한의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 것인가?
『나는 지금 서기 2천년의 세계정세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먼훗날의 일을 가상해서 말한다면 소련이나 중공이 북괴의 한국과의 교류에 이점을 발견할때가 올는지도 모른다.
정확한 예상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한국으로서는 충분한 방위력을 갖추고 국력을 기르면서 장기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는게 좋을 것이다.』
-중소분쟁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가? 그것이 극동정세에 미치는 영향은?

<사상보다 국가이익앞세워>
『중소분쟁이 아무리 만족스럽게 해결된다고해도 과거처럼 공산국가들의 일치단결로 되돌아가지는 못한다.
벌써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보다 민족주의와 국가이익이 우위에 서고 있지않은가?』
-특히 내가 미국서 느낀 일이지만 미국은 아시아의 안보를 위해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같은데 일본이 경제적인 역할이외에 미국의 군사·정치적인 짐을 떠맡을 것으로 보는가?
『일본은 지금 국민총생산(GNP)이 세계에서 세 번째다. 경제적으로 초대국이되면 국가문제에 대해 정치적인 발언권도 가지려고 할 것이다.』
-소련은 지금 아시아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소련의 외교공세를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미국이 동구서 거두는 수확보다 소련이 미국의 영향권인 아시아서 거두는 수학이 더 크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흐루시초프이후 소련의 아시아정책이 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련의 아시아 진출을 미국의 영향권 침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세계를 미소의 영향권으로 나누던 전후시대는 이미 지났다. 미국도 루마니아를 비롯한 동구에 활발한 우호의 손을 뻗치고 있지않은가. 뿐아니라 소련은 한반도에서의 경우처럼 동남아나 특히 인도차이나반도에 있어서의 공산주의자들의 승리를 원치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정학적으로 이 지역은 결국 중공의 세력하에 들어갈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소련의 외교적.경제적 아시아진출을 위협으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지역에 미국의 후퇴로 인한 힘의 공백상태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닉슨은 이제 4년 대통령임기의 절반을 마쳤는데 남은 2년의 대외정책의 전망은 어떠한가?
『월남전쟁에서는 존슨식의 확대에서 후퇴하여 축전을 계속할 것이다. 닉슨의 의중을 알바 없지만 파리회담에 좀더 성실히 임하면 성과를 거둘텐데…. 전략병기제한협상(SALT)은 느린 템포로 꾸준히 진행시킬 것이고 중동문제도 현재의 방향을 계속할 것이다.

<친한적 분위기 조성해야>
그러나 내가 닉슨이라면 대소·대중공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aggressively)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하여(imaginatively) 수행할 것이고 흰피부색을 가진 미군을 아시아의 싸움터에 투자한 존슨의 어리석기 짝이없는 정책에서 과감히 탈피할 것이다.』
-한국은 철저한 반공국가다. 독립이래 이 반공의 이념에 따라 정책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세계는 변하여 지난 날의 아시아의 반공우방들은 지금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이미 맺었거나 곧 맺으려 하고 있다. 반공의 공동전선이란 것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새시대의 조류에 어떻게 자신을 적응시켜야 하는가? 북괴의 호전성은 반공전선의 강화를 강요하고 바깥바람은 탈이데올로기를 촉구하고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이 짊어진 역사적인 사명은 어떠한 것인가?
『내가 만일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사태를 상당히 낙관하겠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강화하면서 경제개발을 통해 생활수준을 높여 번영하는 아시아의 모범국으로 만들도록 할 것이다.
완벽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한국사회의 모든 계층-학생·농민·노동자·샐러리맨들이 모두 만족하고 정부를 지지하도록 경제·사회·문화정책을 수행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쥐고 미군철수와 똑같은 보조로 주월한국군을 철수시키고 북괴의 도발에 대처할 국방력을 강화하면서 밖으로는 아시아 사람들끼리의 이해증진에 앞장을 서고 친한적인 분위기 조성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뉴요크 김영희특파원]

<약력>
▲1919년 텍사스주에서 출생 ▲1943년 미육군사관학교 졸업 ▲1944년 버마지역 OSS(비밀첩보대) 대장 ▲1946년 CIA(미중앙정보국) 부국장 특별보좌관 ▲1951년 소령으로 퇴역·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 획득 ▲1953∼61년 컬럼비아·존즈·홉킨즈대학 등지에서 국제정치학 강의 ▲1961∼63년 미국무성 극동담당차관보 ▲저서 『전략정보와 국가결정』 『냉전하의 동맹정책』 『나토와 미국안보』 『60년대의 대외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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