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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김찬삼 여행기<타이티서 제4신>|성의 개항장…혼합된 세계혈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타이티」섬의 서울「파피테」는 천혜의 훌륭한 항구 도시로서 19세기 말엽인「포마레」 왕조 때에도 서울이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아담한 이 도시는 동서 1천6백km에 걸쳐 있는 1백30여 개의 섬들을 다스리고 있는 행정의 중심지로서 한때 영화를 누리던 최후의 왕인 「포마레」5세가 살던 궁전은「프랑스」총독의 관저로 되어 있다. 이곳은 전세기의「프랑스」풍인「발코니」가 길게 나온 목조 건물들이 많아서 흡사『「프랑스」의 지국』같은 인상을 준다.
원주민들은 그 인종의 원형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혼혈에 혼혈을 거듭하여 매우 복잡한 혼혈 종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들에겐 좀 실례가 되겠지만 유전학의 좋은 연구대상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 다양한 혼혈이 딴은 성의 농으로 생겼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생을 소구하는 숙명을 지닌다면 나의 역설일지는 모르나 특히 여성은 전형적인 성의 마력을 지닌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퇴폐 한 구미의「에로티시즘」의 비윤리적인「섹스」가 아니라 윤리적인 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들은 이런 정신 풍토 속에 자랐기 때문에「섹스」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 원주민에게 세계 여러 인종의 피가 섞인 것은 오래 전부터 이 섬이 남태평양의 주요한 기항지로서 여러 나라 선박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인데, 놀랍게도 지금은 이들의 99%가 세계 여러 나라의 혈통을 받아 들였다고 하는 말까지 있다. 그런데「섹스」는 무엇보다도 강력하여 결합하지 못할 사이까지도 맺게 하여 생리적으로는 혼혈을 이루었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개성은 융화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랄까 잡혼이며 재혼이 많다고 한다. 비윤리적인 성행위의 인과응보라고 하기엔 너무나 비극적이다.
이혼을 하면 자녀는 여자 편이 맡게 되는데 이들에겐 이복형제가 또한 많다고 한다.
「도스트예프스키」의『「가라마즈프」가의 형제』보다 더 좋은 문학적인 소재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들의 혼혈과 유전은「멘델」의 법칙으로도 풀 수 없는 복잡다단한 세계가 아닐까 한다. 이런 혼혈 속에서 혹 놀라운 천재가 나올지도 모르니 이 지상의 비극을 구할 초인을 기대해 볼까.
어떤 식당에서 사귄 한 여성과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데 국적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자기의 결혼 증명서라 할 신분증을 꺼내 보여 준다. 그녀의 아버지는 중국계, 어머니는 원주민, 남편은「프랑스」계 누구누구라고 씌어 있다. 이야말로「코스모플리턴」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인과「인디오」(인디언) 의 혼혈인「라틴아메리카」의「메소티조」도 아름답듯이 이 「타이티」여성은 더욱 아름다운 듯, 국제 미인이 될 큰 조건을 가지고 있을 듯 미소가 많고「스타일」이 좋고 애교가 있다. 남편이 있는 여인이건만 낯선 나그네를 대하는 모습이 여간 멋있지 않다. 공연히 남의 아내와 친히 지냈다 고 엉뚱한 간통죄라도 뒤집어쓰면 큰일이기 때문에 더 가까이 하지는 못했지만 외국인이라고 더욱 반기는 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넋이 팔릴 법도 한 일이었다. 그러나 순수한「타이티」사람을 찾을 길이 없는 것은 아쉬웠다. 이들은「뉴·타이티언」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이「타이티」섬에서 그전에 벌어진 저 유명한『「바운티」호의 반란』은 소설이나 영재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이야기는 아직도 이 섬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1790년 영국에선「넬슨」의 부하로서 용장이었던「블라이」함장 일행으로 하여금 서인도의 영국 식민지에『빵 열매 나무』를 옮겨 심게 하기 위하여 이「타이티」에 보냈는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 빵 나무는『해마다 심지 않고 가꾸지도 않으며 또한 가루로 만들 필요조차 없는 천연의 빵 나무』라고 알려졌었다. 그때 빵 나무를 옮겨가기 위하여「타이티」에 파견되었던 선원들이 영국의 혹사를 벗어나고「프랑스」혁명의 자유주의 사상을 그리워한 나머지 판 란 을 일으켜「블라이」함장 일파를「보트」에 태워 보내고 판 란 자들은「타이티」의 아리따운 여자들을 데리고「피트케언」이란 섬으로 뺑소니를 쳐서 영국을 등지고 만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다만「타이티」미녀만을 데리고 가서 인생의 기쁨을 누린 그 반란자들을 보더라도 이「타이티」여성들이 얼마나 매혹적인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빵 나무는 지금도 원주민들의 중요한 식료가 되는데 여기 저기서 이 나무를 볼 수 있다. 피조물에는「베리에이션」이 굉장히 풍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빵을 만드는 나무를 태어나게 했으니 말이다.「쇼펜하워」의『생명의 의지』보다 더 근원적인『창조의 의지』를 새삼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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