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1)백 철<중앙대 교수>|일제캘린더와 상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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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제 캘린더가 수도서울의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 가격도 1천5백원 내지 2천 원의 고가로 말이다. 나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스러워서 혼자 얼굴을 붉혔다. 대체 파는 사람은 누구이며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 양쪽이 다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문화민족의 타락상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일이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렇게 비굴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캘린더가 들어온 경로는 일본상사와 결탁하고 있는 한국상사가 선물을 핑계로 가져다가 장사를 한다는 것. 남의 결혼식장에 가서 손님을 가장하고 결혼선물을 타내서 가두에 내놓고 파는 행상들의 행동과 똑같은 비굴한 일이다. 이 작은 일 하나로써 오늘 우리 나라 일부상인들이 얼마나 비굴한가를 엿보이게 한다. 그 궁상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다. 오해해선 안 된다. 내가 일본물건이라 해서 신경 과민한 결벽성을 갖고 감정을 쓰고있는 것이 아니다.
대국적으로 보면 차라리 금후의 한국과 일본은 경제·문화에 있어서 서로 협조하고 교류하는 것이 우리의 내일의 번영 길과 통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는 편이다. 그럴수록 그 번영의 길은 정정당당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이다.
1대1의 입장에서 이쪽의 인격과 체면과 자존심과 권리를 충분히 살리면서, 저쪽의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고, 물건을 사고 팔고 하는 정상적인 일을 해야하지 않느냐 하는 말이다. 그 일본 캘린더를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들이나가 밉건 곱건 간에 다 한국민족임에 틀림이 없다면, 그대들이여, 손을 잡고 부탁하노니, 그대들도 민족의 내일을 생각한다면 제발 더 이상 이런 창피스러운 일을 하여 사람들의 얼굴을 뜨겁게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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