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5세 고아와 재회 바라는 80대 노병

미주중앙

입력

올해 82세임에도 매일 일하고 있다는 도널드 노튼 씨가 시카고 다운타운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뒷쪽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보인다.
소총을 들고 서있는 모습.
부평성심동원이라고 불렸던 고아원. 이곳에서 5살 아이와 만나게 된 도널드 노턴 씨는 60년이 지난 지금 재회를 꿈꾼다.
당시 5살이던 김영화. 북한에서 태어났고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부평고아원에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82세의 도널드 노튼 씨. 노튼 씨는 한국전 참전용사다. 1952년부터 1년간 미 해병 1사단 소속으로 한국 부평에 근무했었다. 최근 고향 시카고로 운구된 한국전 참전용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노튼 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 가지 소망을 밝혔다. 한국전 당시 만났던 5살 어린아이와 다시 만나는 것이 그것이다. 이미 흘러버린 오랜 시간 만큼이나 두 사람의 재회가 힘들다는 것은 노튼 씨도 잘 안다. 하지만 그의 소망은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가슴 속에 남아있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정부차원의 기념행사가 열리고 한미혈맹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이 때, 이 80세 노병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당시 하사(staff sergeant)였던 노튼 씨가 김영화(Young Wha Kim)씨를 만난 것은 부평의 한 고아원이었다. 부평성심동원으로 알려진 이 고아원의 아이들은 가끔 부대로 공연을 오기도 했다. 노튼 씨가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은 현재의 김포국제공항인 김포공군부대였다. 노튼 씨는 “고아원 아이들이 부대를 찾아와 노래를 부르고 장기자랑을 했었다. 그 때 처음 영화를 만났다”고 회상했다. 노튼 씨는 “많은 고아들이 있었지만 유독 영화가 나를 따르고 친절하게 대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영화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지만 바디랭귀지로 우리 둘의 대화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뒤 노튼 씨는 기회가 될 때마다 고아원을 찾아 영화 씨와 만났다. 가지고 간 초콜렛과 사탕을 영화의 손에 쥐어주고 지프차를 태워주기도 하면서 미군 하사와 5살 여자 아이는 추억을 쌓았다.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과 같은 명절이 되면 노튼 씨는 고아원을 찾아갔고 그 때마다 5살 어린이와의 우정을 만들었다.

1년 간의 한국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올 무렵 노튼 씨는 영화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부대 관계자에게 요청했지만 미혼 병사는 입양을 할 수 없다는 당시 규정으로 인해 함께 미국으로 올 수 없었다. 헤어지는 날 노튼 씨는 영화에게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노튼 씨는 “차를 타고 부대로 돌아올려고 오는데 영화가 차에 매달려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아무런 말도 안했는데 아마 영화가 직감적으로 이별을 예상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시카고로 돌아온 노튼 씨는 그 뒤 영화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동안 수소문을 통해 영화의 행적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해병대에서 육군으로 편입한 노튼 씨는 대령으로 예편했다. 그 뒤 일리노이주경찰을 거쳐 현재는 연방법무부 소속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김영배(미국명 영 김) 연방판사와는 1990년대 중반 연방검찰에서 함께 일해던 인연으로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노튼 씨는 80세가 넘는 고령임에도 주 5일 일한다. 그는 “영화가 유독 나에게만 친절하게 잘 대해준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시카고로 초청해서 재회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노튼 씨에 따르면 1952년 당시 영화는 5살이었고 1948년 출생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 태어나 남쪽으로 넘어왔고 부모님이 전쟁통에 숨지면서 고아원에 맡겨진 것으로 보인다.

박춘호 기자 polipch@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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