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7개월 AfD 약진 … 힘 받는 유럽통합 반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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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유럽통합 회의론자(Eurosceptics)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2일 총선에서 원내 진출엔 실패했다. 4.7% 득표(원내 진출 기준은 5%)에 그쳤다. 다만 무시할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FDP)의 표를 잠식해 원내 진출을 가로막았다. 중도보수 세력의 연정이 좌절된 이유다. 독일에서 반유럽 통합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시켰다.

 유럽통합 전문가인 안병억(국제관계학) 대구대 교수는 “독일의 반통합 정서는 영국이나 프랑스보다는 덜한 나라였다”며 “이런 독일에서 통합회의론자들이 5%에 가까운 지지를 받은 것은 약진”이라고 풀이했다.

 게다가 AfD는 올 2월에 급조됐다. 창당 7개월 만에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들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해 선거운동을 벌였다. AfD 주축은 대학교수 등 독일 식자층이다. 공동 의장인 베른트 루케(51)는 함부르크대에서 거시경제를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이른바 ‘개미와 베짱이론’을 설파했다. “개미처럼 일하는 우리(독일인)가 베짱이들(남유럽 사람들)을 도와줘서는 안 된다”고 부르짖었다. 그들의 주장은 일부 중도우파 유권자들에게도 먹혔다.

 AfD가 원내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고 4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년 5월에 유럽의회(EP) 선거가 실시된다. 각국 반통합 세력이 벼르고 있는 이벤트다. 현재 분위기는 그들에게 나쁘지 않다.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SR)의 조사 결과 재정위기 이후 서유럽 전역에서 통합 반대 여론이 지지보다 많은 편이다.

 게다가 내년 선거 한 달 전인 4월엔 유럽통계기관(Eurostat)이 재정과 금융 상태를 실사해 발표한다. 메르켈 등이 주도한 재정위기 구제 작전의 중간평가가 나오는 셈이다. 이래저래 반통합 여론이 강화될 수 있다.

 유럽의회 선거는 회원국 27개 나라에서 직접선거 방식으로 치러진다. 영국 통화정책 전문가인 찰스 굿하트 런던정경대학(LSE) 석좌교수는 최근 기자에게 “반통합·반유로 세력이 의석의 20%만 얻어도 유럽연합(EU) 정책 집행을 사실상 막을 수 있다”며 “독일 9월 총선보다 내년 유럽의회 선거가 유로화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재정과 금융 통합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유럽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제껏 유럽 지도자들은 그리스 등의 부도 같은 급한 불을 끄느라 여념이 없었다. 재정통합엔 원칙적인 합의만 봤다. 단일 금융감독기구를 세우기 위한 작업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이 기구는 3조 유로(약 4370조원)로 추정되는 유럽 시중은행들의 부실자산 처리에 필수조건이다. 이 폐기물을 처리해야 돈이 제대로 돌면서 유럽 경제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 반통합 세력이 내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진하면 통합에 딴죽을 걸 실질적 수단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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