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전제옥<서울대 문리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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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내가 처음 본「셰익스피어」극은 1941년4월23일, 즉「셰익스피어」탄생 3백77주년 기념의 밤에서였다. 동경 와세다대학「오꾸마」강당에서였는데 여러 명사들의 기념강연이 있은 후 당시 「와세다」대학 외국인강사였던「토머스·라이엘」씨의 유명한『햄리트』의 3막1장에 나오는 독백은 인상적이었다. 물론 무대장치도 없고 의상·조명 같은 것도 특별한 것은 없었으나 나로서는 본고장사람이 자기네 말로 하는 독백 대사를 듣고 퍽 감명 깊었다.
「라이엘」씨는 내 생각에 이미 50세가 넘어 보였는데, 그의 대사의 유창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얼굴표정과 제스처가 어쩜 그리『햄리트』를 잘 표현하는지 감탄했다. 참 몸에 밴 연기라고 할까『햄리트』가 가슴 속에 간직한 모든 인간의 번민과 고뇌가 거의 완전히 나타내졌다고 느꼈다.
다음에 내가「셰익스피어」극을 본 것은 미국 워싱턴에 있을 때인 1957연초로 기억되는데 그때 마침 「더·올드·빅」극단이 미국순회 공연 중 워싱턴을 방문하여 약1주일간 공연했을 때였다.
그때「레퍼터리」로는 「맥배드」『로미오와 줄리엣』『리처드 2세』『튜로이러스와 크레시다』등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유명한 2막2장의 발코니 장면에서『로미오와 줄리엣』의 대화장면이었다. 「존·네블」과 「클레어·브름」의 배역이었는데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들은 16세가 넘었으나 무대에서는 16세의 「줄리엣」이나 애인인 「로미오」로 조금도 구김살 없이 자연스런 연기를 하여 만장한 관객들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도취됐었다. 화려한 무대장치, 은은한 조명, 연기자에게 어울리는 의상 등이 퍽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내 옆에 앉아있던 노파가 처음부터 대본을 가지고 와서 확대경으로 대사를 따라 내러가며 간간이 무대도 바라보는 것이었다. 「셰익스피어」극이 생활화하여 몸에 밴 좋은 예라 하겠다. 나도 전날 밤늦게까지 대본을 읽어보고 갔으나 외국인인 때문인지 완전히 이해키는 좀 어려웠다. 그후 영국에 가서 「월터르」다리 옆에 있는「더· 올드·빅」극단본거지에서『베니스의상인』등도 보았다.
이번엔 런던·「셰익스피어」·그룹 이 내한 공연하게 된 것은 극동 호인들에게 드문 좋은 기회인데 한가지 부탁이 있다면 이미 제시된 장면을 보기 전에 대본을 읽어보고 가면 더욱 보람을 느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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