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 입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보다 먼저 학교에 나온 몇 명 아이들이 교실 유리창에『호호』입김을 뿜고 그 뽀얀 유리에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낙서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내 아들딸처럼 귀엽게 생각하고 얼른 유리창에 눈을 돌려 저물어 가는 가을을 아쉬워한다.
벽에 걸려있는 두툼하던 달력이 한 장 한장 뜯기고, 이젠 얇은 반소매 「셔츠」를 입은 어린이가 쓸쓸해 보이는 것은 「입동이 이단절기가 지난 탓일까?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가정은 가정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우울해지기 일쑤이다.
가정 주부의 입장에서 볼 때는 김장걱정·연탄걱정·가족들의 옷 걱정 등 어지러울 만큼 많은 걱정이 겹쳐지지만, 학생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학교로서는 학생들의 월동 대책이 큰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내가 생활하는 교실은 「스팀」시선이 돼 있고 그 덕택으로 교실 안에서는 추위를 모르고 생활한다.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우리 나라 어린이들이 난롯불이라도 충분히 피우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생각할 때 자녀를 가진 엄마의 입장에서나, 남의 집 귀한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의 입장에서 가슴 아프게 여겨진다. 다가오는 겨울은 모두 추위에 지지 말고 감기에 걸리지 말자고 나를「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내 학급 아이들에게 힘주어 다짐했다. 세상을 모르고 그저 순진하기 만한 그 귀염둥이들은『얼음」이 얼면 「스케이트」탈테요.』 마냥 겨울이 즐거운 모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