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를 맞으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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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기획재정부가 두 가지 중요한 신호를 보냈다. 첫째,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내년에 복지예산이 100조원을 넘어서고, 복지 예산 비중이 역대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저(低)복지 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인 중(中)복지 시대로의 진입을 예고한 것이다. 또 하나는 기재부가 국회 보고에서 세수 부족을 시인하면서 “추가재원이 필요하면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세입 확충의 폭과 방법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고백한 것이다. ‘증세’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사실상 증세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우리 사회는 복지 예산 100조원 시대를 어떻게 맞을지 고민해야 한다. 복지는 곧 돈이다. 그렇다고 복지가 늘어나니 세금을 더 거둬야겠다는 기계적 논리로는 납세자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조세저항을 부를 수 있다. 우선 정부와 정치권은 나라 씀씀이부터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축소하고 공무원 임금을 묶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보편적 복지’ 공약부터 과감하게 ‘선택적 복지’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무분별하게 밀어붙인 자녀 양육수당·무상급식·기초노령연금 등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았는가. 정부는 복지공약의 구조조정이 우선이다. 이를 통해 한정된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려는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

 물론 세출 삭감만으론 한계가 있을 것이다. 135조원의 복지공약에다 124조원 규모의 지방공약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올 세수도 7조~8조원이 구멍 난 실정이다. 정부는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장담했지만, 그것만으로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를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일정 정도의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점부터 인정해야 한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확대’를 고집하기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할 때가 왔다. 미리 합리적이고 촘촘한 증세 로드맵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증세 과정에서 과세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어떻게 유지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를 맞아 무리 없는 증세를 도모하려면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는 게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