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득순 회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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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원래 예술의 생리는 다양한 것이 되어서 하나의 정형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이 특색이다. 여기 회갑이 되도록 인생과 자연을 충실한 그의 시각으로 보아온 한 화가가 있다면 우선 그의 꾸준한 예술에의 집착에 경의를 표해야한다.
그리고 그의 예술적인 수준은 어떤 것이냐는 것을 문제삼고 싶다. 화가 박득순씨는 그가 화학도로서 익힌 그의 시점을 연륜과 더불어 더해온 돈독하고 진실 한 작가이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자연 속에 스며드는 그의 시각은 자연의 비밀을 하나 하나 헤쳐가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있다.
자연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지 않고 오직 겸손한 마음의 자세로 받아들이는 그의 제작태도는 곧 그의 예술관이기도 하다. 산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있다는 것이 또한 중요한 그의 인생관은 곧 예술에의 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그의 관조는 쉬지 않고 계속하고있는 손의 훈련을 통하여 아낌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섬세하다 못해 질량의 세계를 넘어서는 그의 묘사의 능력은 자연을 주제로 하되 자연보다도 더 아름다운 또 하나의 자연을 만들려고 한다. 모든 물상을 긍정하고 그 긍정의 철학 위에서 방황하는 그의 구상에의 귀의는 집중된 수도사의 길과 같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영원과의 대화 속에서 생의 희열을 느끼는 그의 작품은 그의 인생관 아니 인생자체 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와 같은 그의 작품상의 집념은 현대미술 속에서 어느 의미를 갖느냐는 것과는 별도의 문제다.
지나친 집착 때문에 미적 시야가 좁아지고 지나친 정착 때문에 생과 미의 확대가 없는 독존이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화가적인 존재가 한국 근대 미술사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더욱 예술의 완성은 대개의 경우 인생의 만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볼 때 비록 그의 인생은 회갑이지만 예술은 이제부터인지도 모를 일이다. <17일∼22일 신문회관 화랑에서>
이경성 (홍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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