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들 프로레슬링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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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코, 커트 앵글, 더 락…'.

요즘 초등생들이 줄줄 외는 외국인 이름들이다. 미국 프로레슬링(WWE) 선수들이다.

'박치기왕 김일'의 돌풍이 불던 1970년대 초등생(당시 국민학생) 사이의 프로레슬링 인기가 30년이 지나 다시 폭발하고 있다. 다른 점은 열광의 대상이 미국 선수들이라는 것.

"반 친구들 41명 중 30명 정도는 WWE경기 방송을 즐겨봐요. 선수들 이름은 물론 선수들이 잘 쓰는 기술도 꿰고 있지요. "서울 등촌초등학교 4년 최원석군의 말 그대로다.

WWE가 초등학생들 사이에 전파된 계기는 2000년부터 케이블 TV 스포츠 채널에서 경기 녹화중계를 시작하면서부터.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열린 WWE선수들의 방한 경기는 입장권 1만여장이 단 하루 만에 매진됐다. 관객의 대다수는 초등학생이었다.

WWE 경기를 방영하는 방송사 담당자는 "선과 악이 뚜렷하게 구분될 뿐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캐릭터가 확실해 한번 빠져들면 프로레슬링광이 된다"고 인기의 이유를 댔다.

서울 목동초등학교 6년 김재현군은 "빡빡한 학원 수업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친구들과 프로레슬링으로 푼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교실에서 좋아하는 선수의 흉내를 내거나 레슬링 장면이 인쇄된 T셔츠를 입고 다니는 모습도 흔해졌다.

서울 영훈초등학교 심옥령(51) 교사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몰입하는 것 같다. 소위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한 면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열풍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간다.

참교육학부모회 김현숙(41) 성남지회장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폭력적이다. 공정하게 경기를 하는 게 아니라 반칙으로 이기는 경우도 많아 스포츠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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