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불교운동의 일체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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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0일부터 3일간 세계 불교지도자대회가 서울 워커힐에서 열렸다. 14개국의 불교지도자 7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세계 불교운동의 일체화」와 「세계 평화와 인류행복의 불교적 개현」이라는 두 주제를 다룬 이번 회의는 1천6백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사상 초유의 성사로서 우리의 토착문화하고는 도저히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체질화한 불교정신의 개현을 위해 다시없는 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갖가지 번뇌에 사로잡혀 아비규환 하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이승에 화신 하신 석가모니의 설법이 전세계에 전파된 지 2천년, 불교정신의 가치에 대해서는 오늘날 서양의 최고지식인들 사이에 도리어 새로운 인식이 제고되고 있는 터이다. 한국불교는 다른 여러 나라의 분파적 유형과는 달리, 석가세법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점에서도 이번 서울국제대회는 여기에 참가한 세계불교지도자들에게는 물론, 이들을 통해 진정한 불교정신을 병든 현대문명의 제도를 위해 개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불교의 가르침가운데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중생의 내면세계에 깃들인 본래적 자아의 존엄성을 설파하고, 일단 그것을 깨닫기만 하면 누구라도 부처님과 같은 불성의 개현으로 법열경에 안심 입명 할 수 있다는 우리를 석가모니 자신이 실천으로써 시범해 준데 있다 할 ,것이다. 이점,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가 남긴 계율의 하나 하나를 지킬 때에만 비로소 구원을 받아 사후에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본 기독교적인 계시종교의 세계관·인간관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불교가 가르치는바에 따르면 인성의 본질과 현실생활은 본래가 선도악도 아닌 것이요, 영원히 계속되는 실존 자체의 한 대자 적인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본 점에서 오늘날의 실존철학적 바탕을 누구에게나 알 수 있는 언어로 개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견 무심의 것으로 보이는 삼라만상까지가 불나비처럼 한 발짝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온갖 번뇌에 사로잡혀 과욕을 품고 소아에 집착함으로써 ,현상세계는 살생을 일삼는 케이오스이지만, 사람들이 불법의 설교와 같이 이러한 일체의 비 본래적인 자아를 떨어버리고 대오일번 본원적 자아에 포함된 밝은 심성을 깨닫기만 한다면 누구나 우주의 본원에 귀일할 수 있고, 또 그럼으로써 세게는 절대적인 평화로 가는 도정으로 변할 수 있다는 설법은 매우 실존적인 가르침이기도 한 것이다.
실존적이란 말의 의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본질 직관적으로 파악함으로써 그 기반 위에서 본래적인 진리와 가장 올바른 해결의 방법을 스스로 명증적으로 계시케 해준다는 뜻이다. 일찍이 토인비 교수는 창백한 합리주의적 논리가 구성한 허구 때문에 벽에 부딪치고 있는 서구문명을 구제해주는 해독제적 역할을 찾는다면 그것은 오직 불교적인 세계관을 통해 역사를 재음미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한 일이 있었던 것인데, 불교가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의 개현」에 큰 공헌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현실사회의 문제와는 고의로 눈을 가리다시피 해 온 한국불교의 전통이 오늘날 일반인들의 정신생활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못 미치고, 자체내의 분쟁 등으로 침체를 면치 못하고있던 점은 한국불교지도자들만의 허물은 아니라 하겠으나, 불교의 이와 같은 현실 구제 적인 효능을 최고도로 살리기 위해 이른바 불교사회화에 대한 요청이 목마르게 갈구되어 왔다면, 우리는 이번 서울국제회의가「 세계불교운동의 일체화」를 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냄으로써 세계적으로 그 사회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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