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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山 金東, 대선 후보 5人의 觀相을 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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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權은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이 있다. 민심을 움직이는 이면에는 사람의 지혜를 넘어서는 운세와 기운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관상과 육임, 풍수로 풀이한 2002년 대선의 최후 승자는 누구인가?심오한 역술적 교훈, 의표를 찌르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2002 대선 ‘역술인 보고서’를 집중 기획했다.<편집자>

세상사람들은 사(士)자 들어가는 직업을 선호한다. 판사·검사·의사·변호사·회계사 등. 사자 들어가는 신분은 유교·불교·도교에서도 발견된다. 불교에서는 거사(居士), 유교에서는 처사(處士), 도교에서는 술사(術士)가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거사는 출가하지 않고 재가에서 불교수행을 하는 남자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거사가 주는 매력은 비승비속(非僧非俗)이다. 승(僧)도 아니고 속(俗)도 아니다. 뒤집어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승의 세계가 지닌 신비도 탐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속의 저잣거리에서 치열함도 아울러 맛볼 수 있다. 진여(眞如)와 생멸(生滅)의 세계 양쪽을 넘나드는 운신의 폭이야말로 삶을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닐까 싶다. 붙잡히지 않는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 바로 거사가 지향하는 삶이기도 하다. 인도에서는 유마거사(維摩居士)가 있었다. 불이(不二)의 법문에 들어가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를 물었을 때, 유마거사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침묵이 바로 그 유명한 ‘유마의 일묵(一默)’이다. 중국에서는 당나라때 방거사(龐居士)가 있었다. 마조도일(馬祖道一·709~788) 선사의 법을 이었던 그는 “예쁜 눈 송이 송이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네”(好雪片片 不落別處)라는 화두를 좋아했다. 걸리지 않는 임기응변에 능하였다.

한국에는 7세기 중반 변산 월명암에서 도통한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있다. 부설거사는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인 묘화, 아들인 등운, 딸인 월명과 함께 모두 도통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름하여 패밀리 도통이다. 세계 불교사에서 처자식 모두와 함께하는 패밀리 도통은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남긴 팔죽시(八竹詩)는 도통의 경지가 무엇인지를 짐작케 한다. 죽(竹)은 우리말의 ‘대로’라고 풀이한다.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
(此竹彼竹化去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
(粥粥飯飯生此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
(是是非非看彼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賓客接待家勢竹)
시정 물건 사고 파는 것은 세월대로
(市井賣買歲月竹)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萬事不如吾心竹)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보내
(然然然世過然竹).

유교에는 처사가 있다. 재야에서 학문과 도덕에 힘쓸 뿐 벼슬에 나가지 않는 선비를 처사라고 부른다. 학문과 인품을 갖추었으면서도 벼슬에 나가지 않는 선비는 존경받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정승 3명이 대제학 1명만 못하고, 대제학 3명이 처사 1명만 못하다’(三政丞이 不如 一大提學이요, 三大提學이 不如 一處士라!)이다. 지리산 밑에서 산천재(山天齋)를 지어 놓고 공부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하였던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72) 선생이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처사다.

불교의 거사, 유교의 처사와 같은 사람을 도교에서는 무엇이라 부르는가. 술사라고 한다. 술사는 거사나 처사와는 약간 분위기가 다르다. 거사나 처사에 비해 현실 세계에 보다 많은 애착과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술사란 술(術)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다. 술이란 무엇인가.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술이란 방법론에 해당한다.

학(學)이 이론이라면 술은 이론을 현실에 적응시키는 방법이다. 이론과 실제의 관계가 학과 술의 관계다. 원자력에 관한 이론이 있다면 이를 현실에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원자로라고 하는 하드웨어가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달리 표현한다면 학이 ‘과학’이라고 한다면 술은 ‘기술’이기도 하다. 과학과 기술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 관계다. 체(體)와 용(用)의 관계처럼 붙어 다닌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할 때, ‘00학술세미나’라고 표현하지 않던가. 술사의 개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옳다.

한자문화권에서 인식하는 술사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누구인가. 초한지(楚漢志)에 나오는 장량(張)이다. 일개 건달이던 유방(劉邦)을 도와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의 항우(項羽)를 무너뜨리고 한(漢)나라를 세우는 전략을 보여 주었다. 조선의 역사에서 예를 찾아보면 세조의 참모였던 한명회를 꼽을 수 있다.

“오수중상유일국”(吾手中常有一國:내 손 안에는 항상 한 나라가 있다)이라고 큰소리쳤던 한명회. 그의 코멘트에서 우리는 한명회가 품었던 술사로서의 자신감과 야심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술사의 관심사는 사소한 돈벌이에 있지 않다. 대권의 향배와 같은 큰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어야 진정한 술사다. 대권이 과연 누구에게 가는 것인가. 천하의 민심을 과연 누가 얻을 것인가를 분석하고 사색하는 인물이라야 술사의 자질이 있다.

楚漢志 張의 술사적 능력

술사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공부 과목은 광범위하다.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절의 순환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음양오행에서부터 시작하여 주역·천문·지리·병법·사주·기문둔갑을 공부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천하 운세의 변화를 미리 예견하는 능력과 비상한 인물을 조기에 발굴해 내는 지인지감(知人之鑑:사람을 파악하는 감식력)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을 처음 보고 그 사람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파악하는 힘이 바로 지인지감이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과 봉추의 천재성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한 인물이 바로 사마휘다.

거울처럼 사람을 잘 비추어 보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호가 수경(水鏡) 선생이었다. 맑은 물처럼 사람을 잘 비추어 본다는 뜻이다. 필자가 보기에 장량·한명회·사마휘가 공통적으로 갖추었던 능력은 아마도 지인지감이었을 것이다. 그 지인지감을 갖추기 위한 전공필수 과목은 관상(觀相)이다. 관상은 얼굴의 미추를 분별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얼굴이라고 하는, 나타난 현상을 통해 그 사람의 심상(心相)을 읽자는 데 목적이 있다. 현상과 본질은 유기적 상관관계가 있다고 전제하고, 현상을 통해 본질을 파악하자는 말과도 같다.

관상공부를 통해 지인지감을 획득한 술사가 그 능력을 발휘하는 시기는 천하 대권의 향배다. 오늘날에는 대통령선거가 여기에 해당한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선거야말로 술사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능력을 현실에서 시험해볼 수 있는 시기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작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선이라고 하는 이벤트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활동 영역일 뿐이다. 대선 후보들의 인물 됨됨이나 정책을 검증하는 사람들은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술사들의 영역이었던 것이 이제는 사회과학이라고 하는 학자들에게 넘어갔다. 시대가 바뀌어 어영부영 하는 사이에 술사들은 그만 전공 영역과 함께 밥그릇마저 빼앗겨버리는 황당한 사태에 직면하고 말았다.

밥그릇도 밥그릇이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제대로 된 술사가 배출될 수 없는 구조적인 현실에 있다. 머리 좋고 재력을 갖춘 인재들은 거의 미국으로 유학가 그놈의 MBA인가 뭣인가에만 매달린다. 오로지 미국으로만 줄을 선다. 갔다 오면 연봉 수십만달러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를 나무랄 수만도 없는 노릇 아닌가.

술사는 미신 종사업이요, 완전히 사양 산업으로 인식되다 보니 이 분야에는 쓸 만한 인재가 지원할 상황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어디 하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적막강산일 뿐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호기를 맞이해 술사적 안목에서 이야기를 나눠볼 만한 인물을 찾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고금의 역사를 논하고, 천문과 지리와 인사를 토론하고, 유·불·선을 종합하면서 달빛의 풍류를 아는 인물이 조선땅에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깊이 찾아보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있기는 있다. 조선땅이 작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맥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끊어질 만하면 이어진다.

黃山 金東의 지인지감 능력

전주에 사는 황산(黃山) 김동전(金東·51) 씨를 만났다. 필자가 보기에 정통 술사의 맥을 이어가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먹고사는 문제로 걱정하는 일 없이 술사의 코스를 밟을 수 있었다. 술사가 돈문제에 쪼들리고 생계에 붙잡히면 어찌 천하대세의 미묘한 변화를 탐구할 수 있겠는가.

20대에 6년간 조선 천지를 방랑하면서 기인 달사들을 만나면서 술사수업을 익혔던 것이다. 기본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50대에 이르러서도 그는 호구지책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돈이 너무 많아도 방탕한 생활에 빠져 공부를 못하는 법이고, 너무 없으면 먹고사는 일에 붙잡혀 공부할 여유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 중간 계층들이 도학을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황산은 여러 면에서 술사의 길을 걷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여겨진다. 특히 관상을 기본으로 하는 그의 지인지감 능력을 여러 번 접하면서 감탄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인물을 만나 비상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황산을 만나 이번 대선 주자들인 이회창·정몽준·노무현·권영길·이한동에 대한 관상평을 들어보았다. 필자는 먼저 총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 관상이란 어떻게 보는 것인가.
“좁은 의미로는 그 사람의 얼굴만 보는 것이다. 넓은 의미로는 얼굴을 포함하여 체격, 걸음걸이, 밥 먹는 모습, 평소의 행동거지, 잠자는 모습, 목소리까지 모두 포함한다. 좁은 의미의 관상은 인물감정이라고 표현해야 맞다. 관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넓은 의미다. 정확하게 보려면 그 사람과 어느 정도 생활을 같이 해보아야 한다.”

─ 관상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관상은 중국의 황제시대 당시 의학서로 사용되었던 ‘영추경’(靈推經)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주나라때 숙복(叔服)이라는 인물이 여러 왕들의 상을 보는 데서 그 틀이 잡히기 시작한다. 삼국지에서 조조에게 뇌수술을 하자고 건의하였던 화타도 관상에 능하였다. 관상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의학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장육부에 이상이 발생하면 반드시 얼굴에 그 증상이 표출된다.

예를 들어 간에 이상이 생기면 눈동자 가운데 흰자위가 누런 색깔을 띤다. 그래서 화타와 같은 명의들은 환자의 안색만 보아도 병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관상의 기본을 흔히 ‘관형찰색’(觀形察色)이라고 한다. ‘관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이목구비다. 이목구비의 생김새를 먼저 관찰한다. 이목구비는 부모에게 물려받는 부분이다. 선천적인 요소다. 관형 다음에는 ‘찰색’이다. 찰색은 얼굴의 색깔을 보는 것인데, 이는 수시로 변한다.

예를 들어 ‘고스톱’을 칠 때 ‘스리고’에 ‘피박’을 당하면 안색이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사람 운세의 수십 년에 해당하는 장기적인 전망은 관형을 보고 하지만 몇 달 사이의 단기적인 전망은 얼굴색을 본다. 자색이나 홍색을 띠면 좋게 보고, 흑색이나 회색을 띠면 불길하게 본다. 찰색도 깊이 들어가면 기(氣)와 색(色)으로 다시 나뉜다. 기는 아직 표출되지 않고 잠재되어 있는 요소이고, 색은 이미 얼굴과 피부에 나타난 부분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얼굴에서 아직 표출되지 않은 기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기찰(氣察)이라고도 표현한다.

적어도 상대방에 대한 기찰의 경지에까지 들어가려면 관상가 자신의 정신수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신수련 없이 기찰은 불가능하고, 기찰이 불가능하면 관상의 핵심을 놓치는 수가 있다. 따라서 기찰이 가장 어려운 경지다.”

장경오훼의 相 가진 유방

─ 기찰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느 부위를 보아야 하는가.
“눈이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현재 상태는 물론 잠재적인 가능성까지 엿볼 수 있다. 얼굴 표정이나 말씨는 순하게 보여도 눈빛에는 그 사람의 숨은 야심이나 파워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 사람의 장래성을 미리 파악하는 것도 역시 눈빛에 있다. 눈빛은 숨기기 어렵다.”

─ 흔히 관상의 교과서로 ‘마의상법’(麻衣相法)을 꼽는다. 이 책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10세기 무렵 마의(麻衣)라는 도인의 가르침을 받은 진단이 스승인 마의 선사의 가르침을 정리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관상의 교과서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책은 상대적으로 도가나 불가의 시각에서 관상을 정리하였다. 도가나 불가의 관점은 도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즉, 그 사람의 관상이 과연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혹독한 수행을 견딜 수 있는가를 중시한다.

유가적 입장의 관상하고는 약간 다르다. 유가적 입장이란 누가 대권을 잡을 것인가, 또는 치세에 필요한 용도의 관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발달된 관상이 대권 또는 치세에 관한 관상이다. 난세에 어떤 사람을 신하로 택할 것인가, 또는 식객의 입장에서 어떤 사람을 군주로 모실 것인가 하는 부분이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이러한 현실적 입장의 관상은 참모나 책사들이 연구하였다.

초한지의 장량 본인도 관상에 일가견이 있었다. 장량은 처음 유방의 관상을 보고 ‘장경오훼’(長頸烏喙)의 상이라고 내심 평가하였다. 유방은 목이 길고 까마귀의 부리와 같은 입을 가졌던 모양이다. 이와 같은 관상은 ‘고생은 같이 해도 복은 같이 누릴 상이 아니다’고 평가된다. 일찌감치 장경오훼를 염두에 두었던 장량은 유방과 함께 통일을 이루고 나자 곧 떠날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항우를 물리친 다음 유방은 장량의 동정을 감시하였다. 유방은 측근을 보내 요즘 장량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물어 보았다. 이때 장량은 일부러 땅을 많이 사 모았다. 부동산 투기나 하는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장량이 혹시나 자리를 엿보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던 유방을 안심시켰던 셈이다. 얼마 있다 유방이 다시 장량의 동태를 살폈다. 이때 장량은 일부러 축첩을 하고 있었다. 주색잡기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유방이 안심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유방은 멈추지 않고 장량의 동태를 감시하였다. 이 기미를 파악한 장량은 도저히 안되겠다고 여기고 과감하게 산으로 숨어 버렸다. ‘도덕경’ 9장에 나오는 ‘공성수명신퇴’(功成遂名身退:공을 이루어서 이름을 날리면 몸을 숨긴다)의 경지를 몸소 실천한 셈이다. 한신은 유방 주변에서 머뭇거리다 결국 잡혀 죽었지만 장량이 술사답게 산으로 몸을 숨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장경오훼’라는 관상가적 통찰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사기’(史記) 열전(列傳)의 ‘범수·채택열전’에 보면 관상의 대가인 당거(唐擧)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책사인 채택이 자기를 알아줄 제후들을 찾아다니던 중 일이 풀리지 않자 유명한 관상가인 당거를 찾아가 자신의 관상을 물어본다. 이때 당거는 채택의 얼굴을 보고 “선생은 코가 납작하고 어깨가 넓고 높이 솟아있으며, 이마는 툭 튀어 나오고, 콧마루는 내려앉았으며, 다리는 활처럼 휘었습니다. 성인의 관상은 보아도 모른다고 했는데, 선생 같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수명은 43년 더 살 것입니다”라고 진단하는 대목이 보인다.(을유문화사, 김원중 역)

열전에 등장하는 당거와 채택과 같은 사례는 난세에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 용도의 관상이 유행하였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아쉽게도 이처럼 유가적이면서 현실적인 입장의 관상은 책으로 정리된 바가 없다. 비밀리에 구전으로만 전해진다. 이방원을 도왔던 하륜이나, 세조의 한명회, 그리고 선조 때의 송구봉, 숙종 때의 허미수, 정조 때의 이서구는 현실치세의 관상에 능했던 인물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성계가 정권을 잡으면서 유가가 득세하였다. 그러는 바람에 그 전까지 전해오던 불가나 도가의 관상법은 지하로 들어가면서 민중들의 설화에나 간간이 나오는 정도가 되어 버렸다.”

─ 관상의 뿌리를 공부하려면 자연 현상을 연구해야 한다는데 이는 어떤 의미인가.
“인간을 연구한다는 것은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고, 자연을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이치는 그때그때 인간을 통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상응(相應)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태풍을 보고 인간사를 예측할 수 있다. 난세의 조짐을 미리 보는 것이다.

‘천유불측지풍우, 인유조석지화복’(天有不測之風雨, 人有朝夕之禍福)이라고 한다. 하늘에는 측량하기 어려운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 저녁으로 바뀌는 화복이 있다. 술사는 이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보통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풍우를 예측하고, 조석으로 바뀌는 화복을 미리 감지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술사다. 그러므로 예민하게 자연과 인간을 관찰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낙엽 하나 떨어지는 현상을 보고 천하의 대세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감지하는 일과 같다.

찰색을 보는 시간대는 정오가 좋다. 한낮인 정오는 하늘의 천기가 아래로 내려오고, 땅의 지기가 올라가 맞딱뜨리는 시점이다. 아침에 해가 뜨면 기운이 얼굴에 나타나다 저녁이 되어 해가 기울면 그 기운이 오장육부로 돌아간다. 따라서 정오는 천기와 지기가 가장 잘 균형을 이루어 혈색이 제대로 보이는 타이밍인 것이다. 관상은 이때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것도 나무 그늘 밑에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어찌 자연의 흐름과 관련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김대중 대통령은 火氣의 相

─ 자연재해와 관상의 상관 관계에 대한 좋은 예가 있는가.
“한 가정만 두고 보아도 가장이 어떤 상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집안이 흥하고 망한다. 마찬가지로 국가를 관리하는 대통령의 관상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나라의 진로가 바뀐다. 좁혀 말한다면 대통령의 관상은 국가적 자연재해와 관련될 수도 있다. DJ (김대중 대통령)의 관상을 보자. DJ는 얼굴에 화기(火氣)가 많은 관상이다.
대통령이 화기가 많은 탓에 집권후 전국에서 크고 작은 화재가 많이 났다.

특히 몇 년 전 태백산맥에 산불이 났던 일이 대표적이다. 태백산맥의 상당부분을 태운 산불은 역사상 매우 드문 대규모의 화재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물태우’라는 별명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오고 갔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노대통령때 한강의 뚝이 터지는 대규모 수재가 발생했다. 왜정 때인 1920년대인가에 한강 둑이 터지고는 노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0년이 처음이었다. 이처럼 국가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기운과 그 나라의 자연재해도 어느 차원에 들어가면 서로 상응한다.”

─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인문학적 상상력의 한 사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얼굴에 화기가 많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김대중 대통령은 관상에서 볼 때 상정 부분이 발달되었다. 상정은 얼굴을 3등분하였을 때 상단인 이마 부분에 해당한다. 상정은 얼굴의 맨 위쪽이니 화기로 여긴다. 상정이 발달된 사람은 통상 머리가 좋다고 본다. 그러나 주위 여건 탓으로 이게 순조롭게 발휘되지 못하면 그 화기가 내면으로 축적된다.

대권 후보의 5가지 조건

김대통령의 경우 야당 시절 많은 탄압을 받으면서 화기가 자연스럽게 발산되지 못하고 억눌렸다. 축적된 것이 한꺼번에 외부로 발산되면 화재라는 현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인간 관계도 이와 연장선상이다. 순전히 관상의 입장에서만 놓고 보면 박태준 씨 같은 경우는 김대중 대통령의 화기와 상충되는 금의 기운이다. 그러나 이한동 씨 같은 경우는 김대통령의 화기를 소화할 수 있는 상이다. 대통령과 총리도 서로 궁합이 맞아야 관계가 오래간다.”

─ 관상을 보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가.”
“크게 3가지다. 먼저 금수형(禽獸形)으로 보는 방법이 있다. 사람의 모습을 동물의 형태에 비유하여 보는 법이다. 동물의 성격과 움직임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그러므로 일단 그 사람이 어떤 동물에 해당하는 것인가를 알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분석이 용이하다. 해당되는 동물의 행태를 연구하면 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으니까.

자·축·인·묘·진·사·오·미와 같은 열두 가지 띠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아주 합리적이다. 왜 옛날 현인들이 인간을 동물에 비유하였겠는가. 인간의 행동 양식도 환원하면 결국 12가지 동물의 행태로 귀속된다는 말 아닌가. 인간도 크게 보면 동물의 범주에 속한다. 그래서 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동물의 왕국’을 즐겨 본다. 동물의 왕국은 관상 공부의 첩경이다. 동물세계를 보면 복잡다단한 인간세계가 일목요연하게 보일 때가 있다. 동물은 본능대로만 행동하기 때문이다.

금수형 다음으로 오행으로 분류하여 보는 법이 있다. 그 사람의 외모가 화형(火形)인가 금형(金形)인가 수형(水形)인가로 나누어 보는 법이다. 두 사람이 합쳤을 경우 궁합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데는 이 오행법이 유용하다. 인간 관계의 궁합은 상생만 좋은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극의 관계가 더욱 좋을 때도 있다. 상극이 되어야만 스파크가 튀고, 스파크가 튀어야만 격발시킨다. 격발이란 잠재 능력이 발휘되는 경우를 말한다. 돼지고기와 새우젓은 상극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상생이다.

오행 다음으로는 주역의 64괘로 환원하여 보는 법이 있다. 어떤 사람의 인상을 보고 이 사람은 어떤 괘라는 것을 직감으로 파악하는 방법이다. 몇 년 전에 내가 조선생을 처음 보았을 때 ‘화풍정’(火風鼎)괘가 나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3가지 방법중에서 금수형 관상법이 가장 공부하기 어렵다. 그 대신 적중률은 상대적으로 높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금수형을 전공으로 하고 오행법과 64괘법을 부전공으로 운용할 줄 알아야 한다.”

─ 대권 후보의 요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의 선생님은 이 말을 강조하셨다. ‘사군자포경세지구 필선지오용’(士君子抱經世之具 必先之五用). 선비나 군자가 세상에서 경륜을 펴려면 반드시 5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첫째는 귀달시(貴達時)다. 때가 되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둘째는 귀택인(貴擇人). 사람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을 보아야 한다. 셋째는 귀신발(貴愼發). 출발할 때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 시작을 경솔하게 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정몽준 씨 의 대통령 선거 출마 공식선언 일자도 신중히 생각해서 결정했을 것이다. 넷째는 귀심세(貴審勢). 주변의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옛날 술사들은 적어도 10년 동안의 일기변화를 매일 관찰하였다. 낙엽이 언제 떨어지나, 바람은 어느 방향에서 부는가 등이다.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부른 동남풍도 따지고 보면 10년 넘게 자연현상을 관찰한 심세의 결과다. 다섯째가 귀선물(貴宣物)이다. 주변 상황을 관찰하였으면 적절한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귀선물이란 결국 적절한 행위를 말하는데, 그 적절한 행위의 핵심은 역시 베푸는 일에 있다. 정치는 베푸는 일이다. 제(齊)나라 환공을 도운 관중이 한 말이 있다. ‘지여지위취자 정지보야’(知予之爲取者 政之寶也). ‘베풀 줄 아는 자가 또한 얻을 수 있으니 이는 정치의 요체’라는 의미다. 대권을 추구하는 인물 정도 되면 이상의 5용(五用)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회창, 스스로 움직이고 수고해야 할 시기

─ 이제부터는 각론에 들어가는 질문을 하겠다. 부담이 되겠지만 대선 후보 5명(이회창·정몽준·노무현·권영길·이한동)에 대한 관상평은 어떤가. 옛날 같으면 대권 후보에 대한 관상을 지면으로 발표하는 행위는 역린(逆鱗)이라고 하는 1급 ‘괘씸죄’에 걸려 자칫 형무소 가는 일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다. 아울러 정치보복도 없는 시대라고 다들 이야기하니 괜찮을 것 같다. 너무 심각한 내용은 빼고 ‘교양 + 엔터테인먼트’의 수준에서 말할 수 있는 선까지 이야기 해 주었으면 좋겠다. 순서는 현재(10월 초순) 여론지지도가 가장 높다고 나오는 이회창 후보의 관상부터 언급해 주었으면 좋겠다.

“정치지도자의 관상에서 주목할 포인트는 3가지다. 첫째가 위의(威儀)이고, 둘째가 돈중(敦重), 셋째가 청탁(淸濁)이다. 지도자는 전체적으로 풍기는 인상에 위엄이 있어야 하고, 두터운 느낌을 주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맑은 느낌을 주어야 한다. 이회창 후보는(이하 모든 인명의 호칭생략) 위엄이 있으면서 비교적 맑은 관상이다. 동물의 형태에 비유한다면 독수리나 매의 얼굴이다. 독수리나 매에서 풍기는 날카로움과 위엄이 있다. 독수리보다 약간 작고 매보다 조금 큰 얼굴이라고 하겠다. 그 중간이다.

이회창의 집안을 살펴보면 체구가 왜소한 혈통이다. 만약 체구가 큰 혈통이었다면 독수리 같은 얼굴이었을 것이다. 독수리는 높은 곳에 둥지를 튼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낮은 곳에서 살지 않는다. 얼마 전에 불거진 호화 빌라 문제 같은 것도 독수리가 높은 곳에서 살기 좋아하는 속성이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독수리는 공중에서 빙빙 돌다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하여 신속하게 공격한다. 어지간한 땅짐승은 다 잡힌다. 공격할 때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한다. 아무 짐승이나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공중에서 내려올 때는 정확하고 빠르게 내려오는 동물이다.

그가 이제까지 살아온 과정을 보면 공중에서 돌다 갑자기 내려온 감이 있다. 독수리의 날개로 날았다. 밑에서부터 천신만고 끝에 올라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감사원장 부임 때도 그랬고, 지난 1997년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도 그랬다. 밑에서부터 계단을 밟아 올라간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는 어찌 보면 그 동안의 인생행로가 순조로웠다는 이야기도 된다. 대권을 잡으려면 독수리도 위에서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 밑바닥 서민들의 사정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이회창의 관상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하관에 해당하는 부위다. 하관 중에서도 입을 주목해야 한다.

이회창의 입은 초식동물 가운데 원숭이의 입에 가깝다. 얼굴 전체가 독수리가 아니고 아랫부분은 원숭이의 입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얼굴 전체가 독수리의 얼굴이었다면 지난번 선거에서 틀림없이 대권을 잡았다. 동물 중에서 가장 인간과 닮은 동물이 원숭이다. 관상법에서 원숭이 상은 지혜가 뛰어난 인물로 본다.

역사적으로 원숭이 상은 뛰어난 천재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그랬고, 가깝게는 도올 김용옥 같은 사람이 원숭이 상이다. 이회창의 상정과 중정이 원숭이 같았다면 일본 사람들이 영웅으로 생각하는 히데요시 버금가는 상이다. 이회창의 입이 원숭이 입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말년에 그의 행보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암시한다.

원숭이는 나무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열매도 따고 동료들의 이도 잡아주고 재롱도 떤다. 국민을 위해 열매도 따고 이도 잡아주고 재롱도 떨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독수리처럼 공중에서 빙빙 선회하다 한번에 고공낙하하면 되었지만, 말년에 해당하는 하관의 형태가 초식동물인 원숭이인지라 본인이 부지런히 노력하고 공을 들여야 한다. 본인이 움직여 수고해야 한다. 불우이웃과 소외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점만 유의한다면 대권에 가장 가깝게 접근해 있는 관상이다. 이회창의 입을 가지고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연설할 때마다 입을 트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 교정된 것 같다. 이는 변상(變相)에 해당한다. 관상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매우 잘한 일이다. 입이 틀어지면 구설로 인한 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관상에서 볼 때는 말할 때 입이 반듯해야 좋게 본다. 눈도 좋아졌다. 옛날에는 강하고 공격적인 빛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많이 없어졌다. 보다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감의 반영이기도 하다.

정몽준, 한국 지형에 맞는 행보 익혀야

─ 정몽준 후보의 관상은 어떤가.
“정후보의 관상은 한마디로 얼룩말이다. 넓은 초원에서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아프리카의 얼룩말 같은 관상이다. 여기에 기린의 모습이 약간 첨가되었다. 얼룩말은 넓은 초원을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정몽준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가하게 보이지만 놀라운 스피드를 내장하고 있는 상이다. 풀을 먹고 사는 초식동물이라서 유순하고 유연하다. 결과적으로 축구협회를 맡은 일은 얼룩말 상을 지닌 정몽준으로서는 적합한 일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를 맡아 오대양 육대주를 뛰어다닌 것도 관상에 부합한다는 말이다.

말은 어찌 되었든 그라운드를 뛰어다닐 때 진가를 발휘하게 마련이다. 얼룩말의 장기는 발이다. 뒷발로 한번 걷어채이면 성할 동물이 별로 없다. 사자도 얼룩말을 사냥하면 성공률이 2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만큼 빠르고 뒷발의 걷어차는 힘이 위력적이다. 얼룩말이 홀로 있지 않고 무리를 지어 있으면 사자도 쉽게 공격하지 못한다고 한다. 뒷발질을 하면서 빙 둘러서서 진을 형성하면 사자가 공격할 틈이 없다.

관건은 얼룩말이 무리를 형성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다. 세가 없으면 그림만 좋다 만다. 얼룩말은 혼자 있으면 공격당할 수 있지만, 수백 마리 무리를 지어 초원을 질주하면 장관을 연출한다. 얼룩말은 넓은 그라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세계화 내지 글로벌화되는 시대에 알맞은 상이다.

앞으로 유라시아 대륙이 열리면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동물이 얼룩말이다. 멀리서 보기에 평화롭다고 해서 쉽게 접근하다가는 발에 채일 수 있다. 상으로 보면 정몽준은 사업가 스타일이 아니다. 다른 부위에 비해 코가 발달해 있다. 이러한 사람은 전문직종을 통하여 자신의 성취감을 높이려 한다. 코만 놓고 본다면 한 분야에 몰두하는 전문가의 코다.

얼룩말은 우리나라 제주도의 조랑말과는 약간 다른 종류다. 외국의 말이다. 국내 적응이 필요하다. 얼룩말은 드넓은 초원에서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말이지만, 한국의 지형은 드넓은 초원이 적다. 산이 많은 지형이다. 아프리카 넓은 초원의 얼룩말이 산이 많은 한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현지 적응이 필요하다. 산동네에 맞는 보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논어’나 ‘맹자’같은 동양의 고전을 틈틈이 읽어보는 것도 해당된다. 동양의 고전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최고의 인파이터, 스라소니相 노무현

─ 노무현 후보의 관상은 어떤가.
“노후보는 스라소니다. 스라소니는 표범과 비슷한 동물이다. 표범이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분포해 있지만 스라소니는 만주벌판을 비롯한 북방의 추운 지역에서 주로 서식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인파이터로는 최고가 스라소니다. 그 빠르기와, 한번 물었다 하면 놓지 않는 집중력과 예리함은 호랑이도 스라소니를 쉽게 보지 못하게 만드는 점이다.

이인제가 거기에 물린 것이다. 자유당 시절 김두한과 쌍벽을 이루었던 주먹이 바로 스라소니다. 체구는 김두한보다 작았지만 주먹과 발의 빠르기는 김두한보다 더 빨랐다고 한다. 호랑이보다 작지만 날카로움과 빠르기는 더 낫다. 스라소니와 한번 붙으면 상대가 호랑이라 할지라도 상처는 각오해야 한다. 스라소니와 호랑이의 차이점은 사냥 방식이다. 호랑이는 배부르면 사냥하지 않는데, 스라소니는 배가 부르더라도 먹이감이 보이면 잡는 경향이 있다. 싸움을 더 자주 한다는 뜻이다.

근래에 강원도 일대에서 발견되는 발자국은 호랑이가 아니라 스라소니 발자국이다. 남한에 호랑이는 없어졌을지 몰라도 스라소니는 아직 남아 있다. 스라소니의 습성은 독립독행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간다. 굽히지도 않는다. 스라소니가 고개 숙이는 것 보았는가. 나라가 망하자 눈 내리는 만주벌판으로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하러 갔던 김좌진이나 이청천 장군이 연상된다. 스라소니는 우리 나라에 만주가 회복될 때 힘을 더 쓸 수 있다. 스라소니는 타협하지 않는 기질이 있어 정몽준과의 단일화도 쉽지 않다고 본다.

노무현은 이마의 주름이 인상적이다. 이 주름은 관상에서 현침문(懸針紋)이라고 하는데, 고집을 상징한다. 이마의 현침문은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몰두하는 장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노무현의 고집과 집념을 읽을 수 있다. 노무현의 또 한 가지 특징은 협골이 발달되었다는 점이다. 협골은 광대뼈 부분이다. 노후보의 얼굴을 보면 이 부분이 발달되어 살이 도톰하다. 여기가 발달되면 반항아나 혁명가의 기질이 강하다.

복종하는 타입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이 부분이 툭 튀어나온 얼굴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무현과 박대통령은 약간 다르다. 노무현이 협골 쪽이 발달되었다면, 상대적으로 박 대통령은 귀밑의 턱뼈 끝쪽에 해당하는 부위인 ‘시골’이 더 발달되어 있다. 협골은 정면에서 드러내 놓고 저항하는 타입이라면, 시골의 발달은 한 발 뒤에서 저항을 조종하는 스타일이다. 눈앞의 부위가 협골이고, 눈 뒤쪽 부위가 시골인 탓이다.

협골의 발달은 정면공격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당나라 현종때 반란을 일으킨 안록산이 협골이 발달한 관상이었다고 전한다. 이를 본 어느 술사가 현종에게 안록산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였지만, 현종은 그 말을 흘려듣고 오히려 승진시켜 지방의 절도사로 발령냈다. 그 뒤 결국 안록산은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매사에는 음과 양의 두 측면이 공존한다. 과거에는 협골이 반란 지도자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민주시대는 아래로부터의 지지를 받아야 지도자가 된다. 좋게 다듬으면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관상이다. 노후보에게 권하고 싶은 부분은 신독(愼獨)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홀로 있으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수련이 신독이다. 아니면 선(禪)이나 기도를 해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얼굴을 좀더 맑게 다듬었으면 좋겠다.”

권영길과 이한동, 산양과 사자相

─ 권영길 후보의 관상은 어떠한가.
“권후보는 양의 모습이다. 양 가운데서도 산양(山羊)이라고 해야 더 적합하다. 산양은 산 위의 바위절벽 같은 곳에서 풀을 뜯으며 산다. 평지에서 편안하게 주는 사료나 먹으며 안주하는 동물이 아니다. 험난한 바위절벽을 오르내리며 사는 인생이다.

양은 하늘에 제사드릴 때 ‘희생양’으로 사용되는 동물이기도 하다. 공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권영길의 이번 대권 도전은 실제로 대권을 잡는 데 있다기보다 대중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희생양으로서의 역할에 초점이 있다. 한문으로 양(羊)자를 분석해 보자.

양자밑에 큰 대(大)자를 붙이면 아름다운 미(美)가 된다. 이는 양이 희생을 크게 하면 아름답다는 의미로 변한다. 다시 양자 밑에 쓸 고(苦)자를 붙이면 착할 선(善)자로 변한다. 양이 고통을 감수하면 착함이 된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권영길의 상은 이처럼 자신보다 대중을 위해 희생과 고생을 감수하는 상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할 사항은 양이 고생을 많이 한다고 해서 멸종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산양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국가에서 끝까지 보호해 준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권영길은 국민들이 끝까지 보호해줄 것으로 추측된다.

─ 이한동 후보의 관상은 어떤가.
“이한동 후보는 사자 상이다. 위풍당당하고 힘이 있어 보인다. 그의 목과 어깨 부분을 가만히 지켜보면 사자가 먹이를 노려보는 힘과 기백이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황소가 앞발에 힘을 주고 목을 뒤로 뺄 때의 형국과 같은 당당함과 힘이 배어 있는 상호다. 관형찰색 가운데 관형만 놓고 본다면 5명의 후보 가운데 가장 위풍 있는 지도자 모습이다.

전형적인 호남아의 풍채다. 문제는 이 풍채 좋은 사자가 동물원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부분이다. 동물원에서 주는 먹이만 받아 먹고 안주해 버린 감이 있다. 사자는 초원에서 얼룩말도 잡고 하이에나도 사냥하면서 야성을 길러야 하는데 동물원의 사자로 오래 있으면서 그 야성이 퇴화해 버렸다고나 할까. 이게 참으로 애석하다. 사자는 포효하는 야성과 범접할 수 없는 살기를 지녀야 동물의 왕이다.

이한동은 지금부터라도 야성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동물원의 우리를 박차고 나가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며칠 동안 밥도 굶고 허기도 느껴보고, 호랑이와의 전투에서 육박전도 치르고, 사냥꾼의 덫에도 걸려 상처도 나는 과정을 겪어야만 야성을 회복할 수 있다. 그렇게만 되면 동물의 왕국을 지배하는 제왕의 관상이다. 다시 한번 부연설명한다면 이한동이 씨름해야 할 화두는 ‘지성’이 아니라 ‘야성’이라고 하겠다. ‘야성의 엘자’로 거듭나는 이한동을 기대하는바다.”

─ 5명 후보들의 관상평을 재미있게 들었다. 관상은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는가,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 방법은 무엇인가.
“변상(變相)이라는 게 있다. 타고난 관상을 바꾼다는 뜻이다. 후천적 노력을 통해 변상이 가능하다. 듣자 하니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웃는 연습을 하였다고 들었다. 심지어는 웃을 때 이빨이 몇 개 정도 드러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인가까지 염두에 두었을 정도라고 한다.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 변상을 시도한 것이다.

‘백범일지’에도 보면 김구 선생 본인의 관상은 사람잡는 백정 얼굴에 가까웠지만, 정신적인 수양과 무아봉공(無我奉公)의 대의(大義)를 위한 삶을 살다 보니 얼굴이 바뀐 경우이다. 성형수술도 변상에 해당한다. 성형수술을 하면 부분적으로 운명이 변할 수 있다. 더욱 확실한 변상은 생각이다. 마음을 바꾸면 확실한 변상이 진행된다. 변상이 이루어지는 기간은 짧게는 3일에서부터 길게는 3대에 걸쳐 진행된다. 마음을 바꾸면 불과 3일만에라도 안색과 눈빛이 변할 수 있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자연적인 진행 과정을 따르면 할아버지, 아버지를 거쳐 손자대에 이르러서야 변하거나 정착된다. 예를 들어 조부도 학자를 하고 아버지도 학자를 하면 손자대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학자의 관상이 형성된다는 말이다. 변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사람의 관상이 노력과 의지로써 바뀐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 이번 대권은 누가 잡는가.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하다. 이미 내가 각 후보의 관상을 설명한 내용을 음미해 보면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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