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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빌딩 화재와 소방 대책|불의 무방비지대…고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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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8일 새벽의 서울 삼풍상가 화재는 다시 한번 빌딩 화재에 대한 갖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지난번 국내 최고의 건물인 삼·일 빌딩 화재 때도 그랬지만, 불구경만 해야하는 장비부족의 소방경찰과 자동경보장치하나 갖추지 못한 건물자체의 소방설비 미비문제는 이제 고질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 삼풍상가 화재의 경우, 그것은 전형적인 빌딩 화재시의 위험성을 모두 안고 있었다.
첫째 자동 화재 탐지기, 자동경보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4층에 자리잡은 음식점 외백의 내부가 전부 불탄 후인 새벽 1시43분에야 화재발생신고가 있었다는 점이다. 소방경찰은 4층 7백66평 중 3백여평을 차지한 외백 내부가 전부 타버리는데는 적어도 2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판단, 12명의 경비원 근무상태 조차도 말이 안될 정도라고 했다.
둘째 비상전원이 확보되지 않아 유리창을 뚫고 들어간 소방관의 진화작업의 부진은 물론, 11층 12층에 사는 입주자들이 화재발생과 함께 어둠 속에 갇혀 우왕좌왕 했는가 하면 비상탈출을 위한 유도등 조차 마련되지 않아 30여 가구 1백30여명의 주민들의 대부분이 질식사할 위험에 처해있었던 점도 지나칠 수 없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세째 비록 1명의 질식사망자를 냈을 뿐이라지만 상가 아파트 자체의 출입문이 단일문으로 화재시 입주자 전용의 비상출입계단이 마련되지 않아 연기를 뚫고 나온 주민이 옥상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고 그 나마도 옥상이 안전한 대피장소가 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긴급구조 요청에 응해 출동한 헬리콥터가 헬리포트가 좁은데다 그 주변에 놓인 안테나·피뢰침 등의 장애물 때문에 착륙해 보지도 못한 채 되돌아간 난센스도 빚었다.
네째 l2층에서 연쇄 발화한 화재도 따지고 보면 비상전원의 확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촛불을 켰다가 그냥 둔 채 대피한 것이 원인이 되어 생긴 점.
다섯째 건물 자체의 방화 구획이 전혀 안되어 1개 층이 모두 단일 홀로 되어있어 불이 난 경우 불난 층은 전소를 면할 길이 없다는 점 등 빌딩 화재의 위험성을 전부 안고 있었다.
현재 서울의 경우 3층 이상의 빌딩은 모두 4천5백20동. 그중 소방시설 촉진 대상만도 3천7백2개소로 11층 이상 11개소, 6층∼10층 7백59개소, 3층∼5층 2천7백92개소. 경찰조사에 의하면 그 중 소화설비는 대상건물 3천3백67개소 중 18%인 5백90개소가 미비 건물이고 경보설비는 대상 2천12개소 중 43%인 8백57개소가 미비, 또 피란설비는 대상 1천6백30개소 중 35%인 5백69개소가 각각 미비 된 채로 남아있어 이런 건물에서 불이 날 경우 큰 인명피해를 낼 위험성마저 안고 있음도 드러났다.
경찰은 법정소방 시설만이라도 갖춰주면 화재 때문에 빚어질 피해를 그래도 최소한 막을 수 있다고 하지만, 소방법과 건축법의 개정 없이는 그나마도 강력히 규제하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어 또한 문제점이 되고있다.
삼·일 빌딩 화재직후 경찰은 13층 이상의 고층 건물에 대해선 관할 소방서의 안전검사 없이 입주를 금지하는 소방법상의 강제권을 발동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현행 소방법(7조)상 은행·사무실 등의 용도로 사용되는 건물엔 적용할 수 없는 맹점이 있어 주춤하고 있다.
여기에다 10년 전 장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소방경찰의 소방능력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시경산하 소방장비는 사다리차 3대 화학차 5대, 덤프차 28대, 물탱크 차 10대, 행정차량 17대 등 모두 86대 이지만 대부분이 노후하여 실제 가동할 수 있는 차량은 겨우 40여대 안팎-.
그 중에서도 빌딩 화재에 대비한 고가 사다리차는 높이 30m짜리 1대뿐으로 그나마 13층 이상 건물엔 무력한 실정이다
경찰은 그 대책으로 연결 송수관장치를 사용하고 있지만 수압이 낮을 때는 사용이 불가능한데다 급수전·저수조·급수탑 시설마저 부족하여 새로운 소방장비 도입 등이 이뤄지지 않는 한 소방 무방비 상태를 면할 수 없게 되어있다.
현재 서울 인구 7천1대 비율인 소방관, 인구 5만대 1 비율인 소방차 등 부족하고 노후한 소방기동력 아래서 그래도 빌딩 화재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은 건축시의 소방시설완비와 시민들의 소방훈련, 소방관념 강화 등에 좌우된다고 하겠다.
특히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방화구획·헬리포트·내화벽·피랍사다리·피란 미끄럼대·자동소화장치·자동경보장치·화재탐지기·소화전시설에다 아파트의 경우엔 비상전원 확보와 방송시설로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도 있도록 당국의 끈질긴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건립된지 2년만에 세번째 화재를 빚은 세운상가·삼풍상가의 화재는 소방시설을 갖추지 못한 만큼 피해가 더 했음을 잘 드러내준 좋은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백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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