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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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해에도 또 다시 2, 3백만섬의 외미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는 우리를 서글프게 만들어 주고있다.
우리에겐 피맺힌 어감을 가진 칠탈 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은 우리 나라로부터 임금을 빼앗고, 토지를 앗아가고, 민족의 얼을 잠들게 하고, 성명을 바꿔 쓰게 하고, 우리말을 못쓰게 하였다. 2차 대전 때는 또 인명마저 앗아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쌀까지 겁탈해 갔다는 얘기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쌀을 앗아간 것은 우리 쌀이 일본쌀보다 훨씬 맛이 더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은 쌀이 일본에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그만큼 쌀이 풍족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얘기가 전혀 달라졌다. 일본에서 요새 문제되고 있는 것은 쌀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그래서 영양미라는 맛있고 기름진 개량 쌀이 개발되었다고도 한다. 일본정부는 농민들로부터 매년 8백만t씩이나 쌀을 사들인다. 그런데 그 양이 너무 많아 그 중의 약 1할은 창고에서 썩을 지경이 되고있단다.
이래서 주체할 길 없는 잉여미를 어떻게 처분하느냐가 큰 골칫거리로 등장했으며, 올해에는 드디어 그것을 t당 2만원씩의 헐값으로 돼지사료로 팔아 넘겼다 한다.
현재 일본에는 창고가 모자랄 만큼 쌓인 과잉미가 7백만t. 이처럼 먹지 못할 쌀을 사들이기 위해 정부가 매년 7천억원의 적자를 계산해 가면서 그것을 세금으로 때운다는데 일본사람들의 불평이 있다.
그런데도 바다 건너 우리 나라에선 해마다 2백만섬의 쌀이 모자란다해서 야단이다. 그래도 우리네 농가는 늘 적자에 허덕인다. 쌀이 남아돌아 간다해서 보상금까지 주어가며 제발 쌀 생산을 적게 해달라고 정부가 애원하다 시피하고 있는 일본 농가의 얘기는 실로 꿈같기만 하다.
쌀이 모자라니까 분식을 하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밥을 많이 먹지 않아도 얼마든지 다른 간식으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먹혀 들어가는 얘기다.
분식 장려에 관한 얘기가 곧 식어버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쌀이 흔해져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외미도입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외상으로라면 매우 고마운 일이라고 봐야 할는지도 모른다.
보도에 의하면 3백만섬을 들여오는 경우, 4백억원 이상의 판매대전이 뜬다는 계산을 하고있다는 소식이다.
이것으로 여러 좋은(?)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게 주안점인 모양이지만, 왜 이런 얘기가 지금부터 논의되는 것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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