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웨딩·드레스는 성모의 상징|프랑스혁명 때 기독교 부흥 노려 등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순결과 처녀성을 상징하는 새하얀 웨딩·드레스는 언제부터 입기 시작했을까? 결혼식의 풍습은 많이 변해도 드레스의 흰 색깔만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중세기의 미술품을 봐도 알겠지만, 옛날엔 하얀 웨딩·드레스는 첫 번 영 성례를 할 때나 입었고 정작 혼례 때는 울긋불긋한 예복으로 한껏 호사를 했다. 여기엔 제후의 귀공녀건, 농노의 딸이건 다름이 없었고, 이 풍습은 대혁명까지 그대로 이어졌었다.
그러다가 볼테르 류의 급진적인 무신론이 대두하여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떨어져 가면서, 시민 혁명의 반 기독교적 성격이 뚜렷이 나타나자 가톨릭 내부에서까지 소위 얀센 학파란 계열이 성모 숭배를 반대하게 되었다.
인문주의·이신론·무신론 등의 거센 공격을 받은 가톨릭 정통파들은 마리아에 대한 보다 극진한 신앙을 부흥시키는 것으로 여기에 맞섰다. 이것을 학자들은 18세기의『마리아 인플레이션』이라 부른다.
『마리아 인플레이션』의 하나로서 신도들은 결혼할 때 동정 성모의 상징인 하얀색 웨딩·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1792년 파리 시내에서 신부들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30쌍이 합동결혼식을 올린 것이 한 이 포크가 되었다는 이야기.
이것은 어느덧 나폴레옹의 통령재직 때 이르러 보편화되고 부르봉 왕조의 복고 후부터는 완전한 인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디자이너「이브·셍·로랑」이 색깔과 무늬가 섞인 드레스를 만들어 사보이 가의「마리·가브리엘」양이 입은 것을 보면 혁명 전 풍습이 영영 사라지지는 않을 듯. <불「엘」지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