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한여름 밤의 꿈 서곡, 한여름에 작곡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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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D 결핍으로 등이 굽고 몸이 앞으로 움츠러드는 강직성 척추염(일명 곱사등이) 환자로 키가 작고 얼굴도 못생긴 한 청년이 함부르크에 있는 상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프룸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다. 그녀를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해 버린 청년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여인에게 접근해 대화를 시도하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결혼이라는 것을 하늘이 맺어준다는 것을 믿나요?” 여인은 창 밖으로 눈을 돌린 채 대답한다. “그래요. 그런데 당신도 그걸 믿나요?” “예, 믿고 말고요. 제가 태어날 때 신께서 저에게 제 신부를 알려주었지요. 그런데 신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의 아내는 곱사등이일 겁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외쳤지요.” “신이시여, 안됩니다. 제 아내가 곱사등이인 것은 비극입니다. 차라리 저를 곱사등이로 만드시고 제 신부는 아름답게 태어나도록 만들어 주세요.” 이 말을 들은 여인은 비로소 청년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았고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며 조용히 웃었다.

훗날 그녀는 청년의 헌신적인 아내가 되었는데 당대의 저명한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의 아내이자 음악가 펠릭스 멘델스존의 할머니로 살았다. 멘델스존이 수많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서 ‘한여름 밤의 꿈’을 골라 17세의 젊은 나이에 서곡을 붙인 것은 어쩌면 극적으로 사랑의 꿈을 이룬 할아버지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영향을 받은 때문이 아닐까.

외화 ‘한여름 밤의 꿈’ 한 장면.

멘델스존의 부수음악 ‘한여름 밤의 꿈’은 그가 17세이던 1826년에 서곡이 쓰였고 그로부터 17년 후인 1843년에야 비로소 전곡이 작곡됐다. 그래서 서곡과 전곡은 작품번호도 21번과 61번으로 따로 구분한다. 멘델스존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독일어판을 읽고 베를린에 있던 저택에서 7월 7일부터 8월 6일까지 한여름에 서곡을 작곡한 때는 베를린 대학의 신입생 때였다.

이 서곡의 악보는 1830년 그 일부분이 출판되고 1835년에야 제대로 출판되어 비로소 작품번호 21번으로 기록됐다.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은 다른 오페라 서곡과 마찬가지로 극 전체가 담고 있는 주제를 골고루 담아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목관악기군의 아름다운 화음이 듣는 이를 연극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곧이어 나타나는 제1주제는 4박자의 빠른 춤곡 풍인데 이는 현악기가 주도한다. 갑자기 관악기들이 신비로운 화음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햇살이 비치는 듯한 밝은 가락이 날아들고 행진곡 풍의 호른 소리에 따라 사냥노래가 등장한다. 제1주제의 빠른 춤곡과 대비되는 평안한 제2주제가 점점 클라이맥스로 달려가면 발랄한 전개부에 이어 베르가모 춤곡과 사냥노래의 팡파르에 이어 어두운 최후의 숲 속으로 이끌고 간다. 반복되는 제 2주제의 단조에 이어 마지막 재현부로 이야기가 쓸쓸하게 매듭지어지면 처음에 나타났던 목관악기들이 조용히 서곡을 마무리한다.

음악을 글로 표현해 본 서곡의 내용과 성격이 머리에 쉽게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니 직접 들어보기를 권한다.

김근식 고전음악감상실 더클래식 대표
http://cafe.daum.net/the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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