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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인재, 뻔한 수습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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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

이런 가정을 해본다. 서울의 한 거리에선 오토바이들이 수시로 인도로 뛰어든다. 도로가 약간 막힌다 싶으면 여지없다.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행인들은 적잖은 사고 위험을 느낀다. 급기야 인도를 달리던 오토바이에 노인이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확인해보니 오토바이의 인도 침범을 막아달라는 민원이 앞서 여러 차례 제기됐다. 경찰과 구청 담당자들이 이를 수수방관한 사실도 드러났다. 사고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법 위반과 경찰·구청담당자의 안전불감증이 뒤섞인 ‘예고된 인재(人災)’로 결론 난다. 민원을 소홀히 다룬 관계자들에게 징계가 내려지고 자리가 바뀐다. 사고 직후 한동안 단속도 강화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단속은 시들해지고 오토바이는 또다시 인도를 점령한다.

 물론 조금 과장되고 단순화한 얘기다. 하지만 ‘예고된 인재’로 결론 난 사고들을 보면 앞뒤 흐름이 별반 다르지 않다. 안전불감증 속에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나고 책임자 문책과 담당자 교체가 이어진다. 또 기강을 확립한다며 대대적인 안전점검도 실시된다. 전형적인 사고수습 패턴이다.

 며칠 전 대구역에서 발생한 열차 3중 추돌 사고도 마찬가지다. 사고를 낸 무궁화호 기관사와 여객전무, 대구역 관제실 근무자는 일찌감치 대기발령됐다. 또 대대적인 안전체계 점검에 나선다는 계획도 나왔다.

 이 같은 ‘뻔한 수습책’으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구역에선 5년 전에도 똑같은 유형의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화물차 기관사가 신호를 착각한 게 원인이었다. 당시에도 여러 방안이 발표됐지만 결과적으로 별 효과를 못 봤다. ‘인재’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해 사람에게서만 답을 찾으려 했기 때문 아닌가 싶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오류(error) 가능성이 항상 있다. 상황별 매뉴얼이 잘 짜여 있더라도 그걸 적용하는 단계에서 문제가 터진다. 대구역 사고처럼 엉뚱하게 신호를 착각하기도 한다. 6명이 숨진 3월 여수산단의 사일로 폭발사고처럼 매뉴얼상으론 작업이 불가한 조건인데도 현장에선 작업을 한다.

 그래서 오류를 최대한 줄여주고 보완해줄 시스템이 필요하다. 시스템은 조직일 수도, 첨단 기기일 수도 있다. 앞서 예로 든 오토바이 사고의 경우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고전담반이 즉시 투입되어야 한다. 오토바이가 왜 인도로 쉽게 뛰어들 수 있었는지, 구조적 문제가 뭔지를 찾는 것이다. 도로와 인도 사이 경계턱이 너무 낮은 게 이유라면 이를 높이는 처방을 내려야 한다. 대구역 열차사고처럼 기관사가 신호를 착각하고 열차를 진행한다면 즉시 자동으로 정차되거나 안전한 다른 선로로 유도하는 장치가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고는 다양한 원인이 결합해 발생한다. 엄한 책임자 징계나 인력교체만으론 사고를 미연에 막거나 재발을 방지할 수 없다. 많은 비용과 인력이 소요되더라도 탄탄한 안전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게 예고된 인재를 줄이는 길이다.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