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 + 진로, 독과점 벽 넘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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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고비를 넘었을 뿐이다."

지난 1일 하이트맥주가 진로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하이트맥주 관계자가 한 말이다. 독과점 판정 여부가 진로 인수의 분수령임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맥주시장의 58%를 차지하는 하이트맥주가 소주시장에서 56%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진로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어떤 잣대를 들이댈지가 관심이다. 공정위는 그동안 주요 기업결합을 심사하면서 사안에 따라 기준을 달리 적용했다.

공정위의 기업결합 승인의 기본 잣대는 시장점유율이다. 두 기업이 합쳐진 뒤 시장점유율 합계가 50% 이상이 되거나, 두 기업 결합으로 시장점유율 3위 이내에 들고 상위 3사의 점유율이 70% 이상이면 경쟁제한 요건에 해당돼 공정위는 주식매각 등의 명령을 내려 기업결합을 불허할 수 있다. 시장점유율을 따지는 방법도 다르다. 지난해 삼익악기가 영창악기 인수를 시도했을 때 두 회사를 합하면 시장 점유율이 신제품 시장에서 90%가 넘지만 중고품 시장을 합하면 30% 선이었다. 피아노 시장에서 중고품비중이 더 높지만 공정위는 신제품만을 기준으로 독과점을 판정을 내렸다.

이런 논리라면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는 어떤 경우라도 독과점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하이트맥주의 자회사인 하이트주조(옛 보배)의 텃밭인 전라북도만 놓고 볼 때 진로를 인수하면 전북지역 소주시장의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2002년 공정위는 경남의 소주업체 무학이 사들인 부산의 대선주조 지분을 1년 이내에 모두 제3자에게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두 기업의 전국 시장점유율은 8%에 불과하지만 부산.경남 지방에선 90%를 차지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진로의 소주 시장점유율이 이미 56%를 넘기 때문에 독과점에 걸린다.여기다 주류업체들은 하이트맥주가 소주 유통망을 등에 업고 국내 주류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경쟁제한 요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는 일단 신중한 입장이다. 공정위 이병주 독점국장은 최근 "기업결합 신고가 들어와야 심사를 시작할 수 있다. 아직 시장점유율 등 관련된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아 예비적으로도 심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하이트맥주 측은 이와 관련,"소주와 맥주는 상품이 전혀 달라 각각 별개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며 "소주시장에서의 독과점 여부도 시장점유율.진입조건. 다른 주류 시장과의 연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공정위는 현대자동차와 SK텔레콤이 각각 기아자동차와 신세기 통신을 인수한뒤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겼지만 국제 경쟁력 강화.산업 합리화 등을 내세워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하이트맥주는 또 국내 주류 시장을 보호하고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선 대형업체가 필요하다는 논리도 폈다. 하이트맥주는 진로 측과 인수 양해각서를 체결한뒤 공정위에 기업결합 사전심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윤창희.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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